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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art] "엄마·아빠 있는 친구들이 오늘은 부럽지 않았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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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피아니스트 이루마씨의 음악회에 참석한 위탁 어린이들이 이씨의 사인을 받고 있다.

할머니와 단둘이 어렵게 사는 바람에 매일 아침을 거르고 학교에 가는 경훈(13.가명)이에게 요즘 신경 써주는 사람이 생겼다. SK텔레콤 네트워크 운용본부의 유익선(35) 대리. 유 대리는 주말이면 경훈이를 찾아와 "아침을 거르면 안 된다"며 김밥을 함께 먹고 농구를 가르쳐준다. 경훈이는 "유익한 형"이라고 유 대리의 별명을 부르며 잘 따른다. 유 대리는 경훈이가 학교 성적과 장래 희망.고민 등을 진지하게 털어놓는 거의 유일한 어른이기도 하다.

유 대리는 SK텔레콤의 후견인 사업에서 일대일로 맺어진 경훈이의 '멘토'(후견자)다. SK텔레콤은 6월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는 아이들 30명과 직원 30명을 일대일로 이었다. 직원들은 시간이 날 때 아이들을 찾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등 꾸준히 관심을 쏟고 있다. SK텔레콤의 이원환 과장은 "조부모나 고모.이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에게 적게나마 '부모의 사랑'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경훈이와 유 대리는 10일 SK텔레콤 사옥 로비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이루마씨의 연주회에 함께 갔다. '써니 뮤직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경훈이와 같은 아이들을 멘토와 함께 초대한 것이다. 경훈이가 "유명한 연주자인가 봐요?"라고 묻자 유 대리는 "드라마 '겨울연가'에 나오는 피아노 곡을 연주한 사람이야"라며 설명해줬다. 유 대리는 "경훈이가 음악회에 간 건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경훈이와 동갑인 유진(가명)이와 유진이의 멘토 황철(37.법무실 지적재산권팀)씨도 나란히 앉아 이루마씨의 나직한 피아노 선율을 들었다. 황씨는 그동안 유진이가 좋아하는 배트맨 영화 등을 보여주고 좋아하는 음식을 자주 사줬다. 황씨는 "유진이가 좋아하는 걸 보니 앞으로는 음악회도 자주 가야겠다"고 말했다.

이날 10여 곡을 연주한 이루마씨는 무대에서 "저는 손이 너무 작아 피아노 치며 많이 절망했어요. 여러분 앞에도 분명 큰 시련이 있을 테지만 절대 포기하지 말고 꿈을 이루세요"라는 말로 참석한 아이들을 격려했다.

연주회가 끝난 뒤 아이들은 이루마씨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연주회에 오기 전에는 이씨가 누구인지도 몰랐던 경호(13.가명)는 연주를 들은 뒤에는 그의 팬이 됐는지 종이를 들고 나가 사인을 받았다.

일대일 후견인 사업을 도운 서울시 가정위탁지원센터의 류미 소장은 "부모 없이 생활하는 아이들은 여가시간 보내기가 막막했는데 멘토와 맺어주면서 아이들이 풍부한 경험을 하게 됐다"며 "잠깐 도와주고 마는 사이가 아니라 계속 서로에게 의미 있는 사람으로 남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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