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사회구원은 조화돼야|기독교의 토착화·물량주의 급진적 사회참여문제를 진단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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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종교계의 내년은 분명「기독교의 해」다. 내년으로 천주교 2백주년, 개신교 1백주년을 맞는 기독교계는 올 한햇동안 축제에 앞서 지난날의 공과를 되새기며 내일을 향한 갱신의지를 다졌다. 특히 토착화·탈서구화·자주화등의 용어로 표현된 기독교의 한국화와 교회의 물량주의등은 뜨거운 참회의 목소리를 높였다. 진보노선의 급진적 사회참여와 보수노선의 광신적 성령운동 문제에도 비판의 열기가 뜨거웠다. 최근 이진의 문공장관도 지적한 이같은 한국기독교계의 문제점들을 신학적 측면과 일선 목회적 측면에서 다시 한번 되집기 위한 대담을 마련했다.
사회=오랜만입니다. 변박사께서는 지난해「교회밖 구원론」으로 종교재판(?)을 받느라고 혼나셨고 김목사께서는 일선 목회에 학교강의(연세대) 까지 맡느라 바쁘시지요. 많은 교계문제중 우선 토착화문제를 변박사께서 말씀해주시지요.
변선환박사=기독교계의 문제점으로 새롭게 부상한 토착화문제는 이미 60년대에 크게 제기됐던 겁니다.
「기독교인 한사람 늘면 한국인 한사람이 준다」는 비판으로부터 시작된 기독교의 한국화문제는 우선 타종교는 거짓이며 허위이고 오직 예수 믿는 사람만이 구원의 빛을 받는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버려야합니다.
최근 이진의문공장관도 제기한 기독교 한국화의 문제는 전통문화·종교로부터 단절된「문화고아」로서의 한국기독교를 오늘의 한국적 전통문화·종교의 르네상스시대에 어떻게 적응시켜 나갈것인가라는 각도에서 논의돼야할 것 같습니다.
김호식목사=문제 제기로서는 오히려 진부한 감이 없지 않지요.
기독교 복음의 진수를「꽃의 씨」로 비유한다면 꽃을 피우는 토양은 재래문화라고 할수있읍니다. 따라서 서구로부터 수입된 한국기독교는 씨만 가져오면 됐지 화분에 흙까지 함께 담아올 필요는 없는 거지요.
기독교 자체의 고정 모델이란 있을수 없읍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나라의 문화적·역사적 정황과의 접합에서 성장, 나름대로의 모델을 만들어가는게 기독교선교방식이지요.
변=신주를 불사르고 제사를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기독교인=반전통」의 등식이나 타종교 저주의 「도식화」는 하루속히 떨어버려야 합니다.
초기 선교사신학도 한국전통문화를 그처럼 배척한 것만은 아닙니다. 감리교 선교사의「타종교 진리시인」주창이나 장로교 「언더우드」 선교사의 『예수 믿는 자는 각국의 풍습을 쫓으라』 는 권유 및 「피셔」선교사의 『조상숭배 제사는 고도의 형제애』라는 설파등은 전통·타종교수용을 강조한 대표적 예지요.
어쨌든 한국기독교는 이제 선교1백년을 맞는 시점에서 20여년전 제기된 기독교의 한국화문제를 훌륭한 신학적 유산으로 재음미, 「저주」룰 대화로 바꾸고 한국문화와 종교적 전통에 깊은 뿌리를 내리는 성숙한 종교가 돼야겠읍니다.
김=자체 토양에 토착하지 못하고 항상 외래적임으로써 실패한 기독교선교의 대표적 예는 북아프리카와 중국이지요.
이제 보수신학자들의 모임에서까지 한국기독교의 탈서구화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니 제사금지등의 문제는 절을 한다는 사실을「우상숭배」로 보는 단순논리를 떠나 1백주년을 계기로한 한국교회 나름의 관혼상제 지침 같은 것을 마련해야겠읍니다.
변=제사에 대한 터부는 시급히 깨야합니다. 십계명에도「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지 않습니까. 남북대화의 문제는 정치신학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지만 종교 없는 정치는 인간을 성숙시키지 못합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한국화문제는 남북대화문제등을 포함한 종교·정치상황 모두가 폭넓게 다루어져야겠지요.
김=기독교의 재래적 가치파괴와 외래성 선호를 탈피할 한국화는 우선 엘리트 기독인의 수범이 앞서고 대중으로 이어져야할것 같군요.
변=한국교회 병리현상의 하나로 지적되고있는 대형화지향의 팽창주의 및 물량주의는 70년대 여의도광장 대규모집회와 관련하면서 불붙기 시작했지요.
대형화 자체가 문제될건 없읍니다. 대형화 속에 만연되고 있는 교권주의, 돈으로 구원을 사는 현상등이 문제지요.
한국교회의 팽창주의는 교역자 우상화, 성속이원론등 개신교신학체질과는 전혀 맞지 않는 역기능을 보이며 마치 종교개혁 당시의 「면죄부」나 중세의 주술적 성찬론을 방불케 하는 인상마저 없지 않습니다.
김=교화 물량주의 속에 도사린 기복적 샤머니즘은 한국기독교의 중대한 위기입니다.
한국교회는 한번도 교회주의를 가져보지 못한채 역사적으로는 이미 실패한 교회주의의 전철을 밟고 있어요.
대형교회· 교회난립·재정의 교회내 사용문제등으로 압축되는 한국교회의 물량주의는 사회지탄의「민폐」 (소음공해등)까지 끼쳐 국가법의 제재를 받는 창피를 당했읍니다.
교인과 교회, 국민의 일치가 없는 기독교는 망하고 맙니다. 사찰이 부하고 특권층과 결탁해 불교의 꽃을 피웠던 신라·고려는 꽃을 피우자마자 불교도 나라도 함께 망하고 말았지 않습니까.
어쨌든 한국교회는 교회귀족화 현상등을 하루속히 타파. 교회가 나라와 민족을 망하게할 「위기단체」라는 우려를 씻어주어야 겠읍니다.
변=세상이 교회를 의해 있는게 아니라 교회가 세상을 위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부는 오늘의 선교목표인 인간화를 위해 쓰여지고 응달의 사회로 환원돼야겠다는 것입니다.
김=진보교회의 급진적 사회참여나 보수교회의 카리스마적 성령운동등과 같은 과격화 현상도 많은 비판을 받아왔읍니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키 위한 방안의 하나로 기독교 본질의「공격성」을 동양적인「수동성」에 조화시키는 기독교의 한국화가 선행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심령구원의 교인이 아무리 많아도 사회윤리가 죽어있으면 소용없고 반대로 사회구원만 되고 개인의 심령이 치유되지 못해도 불구의 사회입니다.
따라서「하느님의 선교」와「그리스도의 선교」, 영혼구원과 사회구원을 이분법화하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며 이같은 양극화 논리는「함께하는 배합」융화를 기해야겠지요.
변=정치적 급진주의나 카리스마적 성령운동은 모두가 기독교자체의 속성인「래디컬리즘」에서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읍니다.
근래 사회문제로까지 번진 정치신학·해방신학의 문제도 나는『그같은 신학적용의 상황적 배경을 깊이 생각지 않는 축자적적용』 은 있을수 없다고 봅니다.
남미의 해방신학이나 서구의 정차신학·여성해방신학을 한국사회상황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태도에는 반대입니다.
그러나 해방신학이나 정치신학을 금기시해 젊은이들이 접할수 조차 없게하는 관계서적 판금의 금서조치등은 충분한 고려를 해봐야할 문제지요.
오히려 판금조치가 「이해이전」의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얘깁니다.
사회=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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