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값 덤핑과 출판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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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책값의 변칙 덤핑행위가 규제를 받게 되었다.
정가의 10분의1 혹은 5분의1 값으로 터무니없이 덤핑판매 하거나 한가지 책을 사면 다른책 여러 가지를 공짜로 준다고 변칙덤핑을 해온 출판사들에 대해 경제기획원이 공정거래위반을 경고한 것이다.
변칙 덤핑행위 자체는 이렇게 공정거래를 해쳐 지탄되는 것이지만 거기엔 감추어진 부끄러운 구석들이 있다.
그 덤핑서적들이 거의 전집류이며 그것들의 가격이 애초에 터무니 없이 높게 책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할인가격으로 여러가지 책을 무료제공 한다고 선전함으로써 소비자를 기만하고는 결국 제값을 다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같은 상거래행위가 야비한 것은 두말 할 것이 없지만 이것을 통해 반영되는 우리 출판업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그 하나는 출판업자의 자질과 양식이 위험한 지경에 있다고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들이 만든 책의 질 문제다.
이번에 경고를 받은 출판사가 무려 16개 사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이나 그들이 만든 책의 질이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이겠는가를 생각하면서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다.
출판업이 문화사업의 일종이며 출판물이 지혜의 보고로서 지적 저작권의 상징이 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저질 책의 운반과 덤핑판매의 사기술이 횡행하게 된 출판계의 현실은 그 같은 인식에 먹칠을 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 심각한 문제는 몇 개 출판사의 덤핑행위가 아니라 그런 출판풍토를 조성하고 있는 우리출판계의 딱한 현실이다.
출판문화협회의 통계에 의하면 82년의 도서출판 발행총량은 2만9천 종에 8천8백33만 부로 전년보다 22%가 증가했다.
그 발행량은 「세계도서의 해」였던 72년에 비해 발행종수 6·5배, 부수 8·1배, 생산액은 무려 37·5배로 늘어난 실적이다.
「유네스코 통계연감」에서 보면 발행종수에서 세계10위의 실적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그 같은 성장실적이 외화내빈의 허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종당 발행부수는 81년보다 0·8%, 78년보다는 무려 28%나 감소되고 있으며 국민1인당 겨우 2·4권 밖에 안되는 형편없는 실적일 뿐이다.
그것을 출판사와 대비하면 1개 사 평균생산량은 고작 13·4종, 4만5천27부, 1백71만원에 불과해 우리 출판계의 영세성을 단적으로 설명한다.
그 같은 영세성과 소량생산에 따르는 가격불안, 매상의 격감, 영업세 부담의 가중, 반품과 재고의 증가 등 만성 불황 때문에 유통질서의 혼란상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2천2백 개의 출판사 가운데 99%가 영세출판사라는 현실이나 정부수립 이후 82년 말까지 3천 여사가 등록취소되고 3천6백7개사가 자연소멸된 사실은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그 같은 상황에서 몇몇 양심있는 출판인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양서를 공급하고 있으며 거기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 결과 아이디어 경쟁에서 승리한 몇 개 출판사는 연매상 1천억원의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출판사간의 격차는 날로 심화되고 중소 출판사들의 곤란은 가중된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 때문에 한탕주의 출판사도 나오고 덤핑출판사도 나와 물의를 빚는다고 할 수 있다.
덤핑출판사들은 이번 공정거래 위반으로 경고를 받고 있지만 그들의 행위가 출판업의 영세성을 극복하기 위한 변칙플레이라고 해서 결코 용서될 수는 없겠다.
문화상품으로서의 책의 품질을 지키기 위해서 뿐 아니라 출판인 자체의 긍지와 자질향상을 위해서도 그렇다.
출판계가 체질적인 영세성과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유통기구의 개선과 출판금고 등 제도개선을 통해 자체의 문제를 해소하며 정당한 성장을 기하도록 상호 협조하기를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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