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저희는 사람을 보고 투자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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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이사

박근혜정부 경제정책의 대명사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창조경제’로 인해 다방면에 걸친 창업 열기가 뜨겁다. 덩달아 주로 초기 기업에 투자하고, 그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모험자본인 벤처캐피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 취임 초기에 청와대에서 마련한 금융인과의 오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창조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금융의 역할에 대해 논의를 하는 자리였다. 오찬 중간에 박 대통령은 벤처캐피털업계 대표로 참석한 분에게 질문을 했다. “초기벤처에 투자를 할 때 어떻게 평가를 하고 결정을 하는 건가요.”

 대답은 바로 나왔다. “벤처캐피털업계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 셋째도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저희는 사람을 보고 투자를 합니다”.

 일정이 촉박해서였는지 추가 질문을 하지는 않았지만 대통령을 비롯해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 뻔하고 간단한 답에 만족하지 못하는 듯했다. 모두가 감탄할 만한 기발한 사업 아이디어로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이 벤처기업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어서 이를 알아볼 만한 ‘혜안’의 비법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치고는 너무 싱거운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답변은 그야말로 ‘모범답안’이었다. 사람에게서 기발한 사업 아이디어도 나오고 사람을 통해 놀랄만한 성공도 이루게 된다. 창업가들이 투자 유치를 위해 벤처캐피털에 제출하는 사업계획서를 투자 후 1년이 지난 뒤에 다시 들여다 보면 애당초 약속한 매출 계획이나 사업 계획의 달성도는 채 20%를 넘지 못한다. 창업가들이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라 애써 노력했으나 성취하지 못한 것이라는 걸 벤처캐피털은 다 안다. 아마존도, 네이버도, 알리바바도 다들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사업계획서 대로 일이 진척되지 않을 때 그런 난관과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는 담대함을 창업가나 경영진이 가지고 있는가를 투자 결정시에 가장 중요하게 살피게 된다. 그래서 아이러니하지만 벤처투자자는 ‘사업계획서’가 틀릴 줄 알면서 ‘사람’을 보고 결정하게 된다.

 창업 후 사업이 뜻한 바대로 되지 않을 때 창업가들은 대체로 자신이 목표로 한 시장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고, 애당초 공략하고자 했던 시장에 대해 재검토를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기확신을 상실하기도 하고, 창업을 꿈꾸며 가졌던 열정도 한 풀 꺾이게 된다. 이 때 요구되는 것이 창업가의 능력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역시나 사람의 몫이다. 당면한 상황을 단순화시키고 현재 자신들이 갖춘 역량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레이저 불빛과도 같은 고도의 집중도를 발휘해서 한가지씩 난관을 돌파해 나가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고비를 넘기고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본격적인 성장의 단계로 접어들 때 다시 한번 사람의 중요성이 나타난다. 창업가가 갖추어야 할 역량 중 가장 고난도의 역량이 바로 조직관리 능력이다.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을뿐더러 스타트업이 당면하는 인사나 조직 문제는 정형화되어 있지도 않다. 하지만 성공한 창업가들의 면면을 보면 절대 다수가 조직을 관리할 줄 아는 지도자적 기질을 갖추고 있다.

독단적이거나 혹은 반대로 우유부단한 모습의 기업가는 결국 조직관리에 실패하게 되고, 그렇게 부실한 조직력을 갖춘 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다시 복귀해서 한 일은 창의력과 실행력을 갖춘 각 영역의 고수들이 주저함이 없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려 했던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직 관리를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벤처캐피털이 하는 일은 아이디어나 특허에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창업가’ 즉, 사람에 투자를 하는 것이며, 그 사람이 만들어 나갈 ‘기업’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특허나 아이디어는 사업을 시작하게 만들지만 성공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사람이 한다. 투자 의사를 결정할 때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사람을 봐야 하는 이유이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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