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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다 득표 증가 전중 16을 기록|일총선····이런일 저런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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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번 총선의 최대쟁점이었던 록히드 수뢰사건의 장본인인 「다나까」전 일본수상이 그의 지역구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이 확정됨으로써 그에 대한 비판을 일축.
이로써 「다나까」전수상은 지난1946년 정계에 첫발을 디딘 이래 16선 의원이 되었다.
5석의 의석을 놓고 9명의 입후보자가 경합을 벌인 니이가따의 제3선거구에서 「다나까」전수상은 지난 72년부터 74년까지의 수상재임시 미록히드사 항공기의 구입촉진 댓가로 2백만달러(5억엔)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10월12일 유죄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선이 확정됨으로써 부동의 정치기반을 과시했다.
이번 선거에 앞서 지난 80년6월 실시됐던 중의원선거에서도 「다나까」전수상은 1위로 당선됐었으나 13만8천표를 획득하는데 그쳤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최종 개표결과 22만표를 돌파,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반면 자신의 고향에서 「다나까」전수상에게 도전하기 위해 참의원직을 사임하고 이번 총선에서 「다나까」전수상과 경쟁을 벌였던 저명 소설가이자 정치인 「노사까」(야 반소여)씨는 2만5천표로 득표순위 7위에 머물러 탈락하고 말았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67·94%로 전후 실시된 과거 15차례 총선가운데 최저를 기록했다.
자체성집계에 의하면 유권자 8천4백25만명 중 투표자는 5천7백24만 명이었다.
도오꾜(동경)의 투표율은 59%로 전국에서 최저이며 최고는 시마네(도근)현의 81·63%.
지금까지의 중의원선거에서 투표율이 가장 낮았던 때는 47년4월의 67·95%였고 자민당이 압방한 80년 총선 때의 투표율은 74·57%였다.
이번 선거에서 투표율이 저조했던 것은 전국적인 한파와 함께 국민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시바시·마사시」(석교정사)사회당 당수는『이번 선거는 일본인들이 막부쇼오근(장군)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일본정치를 승인하느냐를 판가름하는 선거였다』고 말했다. 쇼으군은 말할 것도 없이 정치무대에서 물러난 뒤에도 오랫동안 장막뒤에서 일본정치를 주물러온 「다나까」전수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자민당비주류들은 자민당의 고전은 이른바 10·12 「다나까」판결 후 「다나까」전수상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야당의 정치공세 등을 국회해산 총선거라는 방법으로 해결하려했던 「나까소네」수상의 소극적인 「정치대응」이 결과적으로는 일본유권자로부터 『필요이상의 절대적 과반수의석확보에서 오는 자민당독주』라는 반감과 불신감을 자초했다고 말하고 있다.
○…공명당을 비롯한 야당의 의석이 착실한 신장세를 보인 것은 여야백중의 「의회정치 재현」이라는데 유권자 호소가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 결과로 받아들여 지고있다.
특히 공명당이 당초 예상보다도 훨씬 많은 의석을 확보하게 된 것은 여야의 극한상황을 중도입장에서 상호 견제, 조정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여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 주류들은 「나까소네」수상이 비록 총선에서 패하기는 했으나 이는 엄격히 따져보면 지난 80년 중·참의원 동시선거당시 「오으히라 사망」 충격으로 일본유권자들로부터 자민당이 예상 이상으로 많이 받았던 표들을 다시 내준 것으로 일방적인 책임을 추궁 받을 이유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있다.
○…개표결과가 예상외로 불안하게 나타나자 동경 나가따(영전)에 있는 자민당본부는 침울한 분위기 속에『그래드도과반수만은 차지하겠지』하는 한 가닥 기대를 걸고있었다.
18일 하오8시가 조금 지나「니까이도」(일자당진)간 사장을 비롯한 당3역과 각 파벌의 간부들이 당사에 나와 당락이 발표 될 때마다 일희일비하면서 개표상황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밤이 깊어가면서 점차 자민당의 예상이 수그러드는 듯 하자 이들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나까소네」(중수근강홍) 「후꾸다」(폭전규부)현·전직 수상이 개인의 명예를 걸고 격돌한 군마3구에서는 「후꾸다」 전 수상의 승리로 판가름.
「후꾸다」전 수상은 「나까소네」수상의 11만7천9백70표에 비해 12만9천1백표를 얻어 5연승함으로써 대 「나까소네」 전적을 9승4패로 끌어올렸는데 현직 수상이 톱으로 당선하지 못한 것은 전후 처음.
숙원이 이루어지지 않자「나까소네」 수상은 비서를 통해『유감』이라고 짤막한 소감을 발표했는데 「후꾸다」 전 수상은 당내에서 계속 원로로서의 발언권을 유지할 수 있게된 셈이다.
○…숙적끼리 맞붙은 모꾸시마(덕도)에서는 「고또오다」(후등왈정청) 관방장관이 현직각료의 장점을 살려 「미끼」(삼목무부)전 수상을 누르고 최다득표를 달성.「미끼」전 수상이 「다나까」공격의 선봉장인데다「고또오다」 관방장관은 「다나까」의 1급 브레인이어서 관심을 끈 대전성적은 「고또오다」 8만1천9백75표, 「미끼」 6만3천8백91표였다.
○…「다나까」전수상의 압승과 함께 타 파벌에 비한「다나까」파의 선전은 역시 문리라는 명분보다 실적을 앞세운 현실의 승리로도 분석되고 있는데 회색고관으로 공격받던 「니까이도」(일암당진) 간 사장과 「가또」(가등륙월)국토청장관도 여유있게 당선.
개표결과(1백98명 당선 현재)만으로 분석할 때 집표기계라는 별명대로「다나까」파는 타파를 압도하여 52석을 확보함으로써「다나까」군단의 건재를 과시.
○…이번 선거에서 당락이 관심사로 돼왔던 배해도 제5구에서는 자민당총재에 입후보했다 사망한 고「나까가와」(중천일낭)의원의 아들 「나까가와·쇼이끼」씨가 당선이 확정, 3O세의 젊은 나이로 부자2대의 국회의원 당선이라는 영광을 차지했으며 「다나까」전 수상의 사위 「다나까·나오끼」도 후꾸시마(폭도)에서 처음으로 출마, 장인의 유죄판결에 관계없이 거뜬히 당선됐다.
그러나 「세또야마」문무상, 「오오노」노동상, 「니시오까·다께오」자민당정조부회장, 「네모또」전 건설상,「구보따」전방위청장관 등 현역자민당 내각 각료·당간부 및 옛 저명인사들은 탈락의 고배를 마셔 세대교체현상이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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