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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과 남북 FT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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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6일 설명회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첫선을 보인 개성공단은 남한의 기술.자본과 북한의 토지.노동력이 결합한 남북 경제협력의 대표적인 사업으로 소개됐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남북 상생의 놀라운 아이디어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회의장 한쪽에서 별도로 진행된 한국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장에서는 개성공단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싱가포르 등과의 FTA협상에서처럼 개성공단 제품의 원산지를 '역외 가공'으로 인정해 한국산으로 봐달라는 우리의 요구에 일부 국가가 난색을 표명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일부국가 "한국산 아니다"

"북한의 다른 지역에도 공장을 세워 값싼 제품을 만든 뒤 무관세 혜택을 받는 한국산으로 둔갑시켜 시장을 석권하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서였다.

개성공단 제품이 높은 관세를 받는 '북한산'으로만 표시해 수출하게 되면 이를 새로운 수출전략기지로 활용하겠다는 우리의 전략은 큰 차질을 빚게 된다.

이처럼 딜레마에 빠진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원산지 인정 문제는 크게 보면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나라 안팎의 시각이 다른 데서 출발한다.

남북 경제협력은 그동안 1992년 남북 관계를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남북 거래는 민족 내부 거래'라는 원칙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이에 따라 관세 없이 물자를 주고받고, 비자를 받지 않고도 이웃집 드나들듯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됐다. 올 4월 15년 만에 개정된 남북교류협력법은 아예 법적으로 남북 간 거래를 '민족 간 거래'로 명시해 놓았다. 당시 정부는 "남북이 번거로운 절차 없이 무관세로 상품교역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고 자랑했다.

과연 그럴까.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등에 따르면 북한은 엄연히 독립적인 관세구역을 운영하는 별개의 경제주체다. 남한이 북한과의 거래를 내부거래로 보고 무관세 등 특혜를 주면 다른 나라에도 똑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모든 나라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WTO 규정을 위배하는 것이라는 게 국제 통상계의 정설이다.

내부거래 논란 빨리 정리를

남북 간 거래가 내부거래로 인정받지 못한 데는 우리의 잘못도 크다.

67년 한국이 WTO의 전신인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가입할 당시 가입서에 '남북 거래를 내부거래로 인정한다'는 유예조항을 빠뜨렸기 때문이다. 이미 '동독과의 거래를 민족 내부 거래로 본다'는 예외규정을 뒀던 서독의 가입서를 한 번만 들여 봤더라면 뒤늦게 후회할 일도 없었다.

우리 스스로 해석이 제각각인 것도 큰 문제다.

한국은행은 2003년부터 국제수지 통계에서 남북한 상품 반출입을 외국과의 거래인 수출입 통계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교역 상대국이 '너희 내부에서도 북한을 외국으로 보는데 무슨 민족 내부거래냐'라고 우겨대면 할 말이 없다. 지금부터라도 남북한이 FTA를 맺어 내부거래 논란을 깔끔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과 홍콩은 2003년 '경제파트너십 협정'이란 이름으로 사실상의 FTA를 맺어 상호 무관세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남북경협의 성격을 '우리끼리'식으로만 해석해선 안 된다.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국제적으로도 내부거래임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남북한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홍병기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