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자영업자 소득부터 제대로 파악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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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사실 오래전부터 근로자는 정부의 세수 확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특히 과거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던 시절에는 몇 년만 근로소득세 세율체계와 공제수준을 유지만 해도 세수가 저절로 늘어나게 할 수 있었다. 이는 물가상승을 세제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물가상승으로 명목소득이 높아지면 누진적 소득세 체계에서 실질 세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가상승으로 실질 세부담이 커져도 근로자는 여기에 불만을 갖지 않았다. 그것보다 소득파악이 제대로 안 되는 자영업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는 현실이 더 큰 불만이었다.

그런데 이런 불만이 지난 수십 년간 계속됐음에도 왜 해소되지 못하는 것일까? 이는 그동안 정치논리와 인기영합이 작용하면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영자 소득을 철저히 파악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 근로자 세부담을 경감해 주는 임시방편이라는 쉬운 길을 택했다. 그러나 이는 근로자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근로자 세부담을 경감하고 저소득 근로계층의 세부담을 완화한다는 명분으로 면세점을 인상했는데 이는 오히려 근로자의 부담을 더욱 늘리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세금을 내는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반밖에 안 되는 현실에서, 면세점을 높이면 상위 50%의 근로자만 혜택을 보게 될 뿐 아니라 그 혜택은 고소득층이 더 많이 가져가기 때문이다. 또 이런 면세점 인상으로 부족해지는 세수는 소비세를 인상하거나, 지출을 줄이거나, 아니면 물가상승에도 소득세를 오랜 기간 조정하지 않으면서 보충했다는 점에서 궁극적인 부담은 근로자들에게 돌아간 셈이다.

지금 다시 커지고 있는 근로자의 불만을 정부나 국회가 과연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예전처럼 면세점을 인상하는 식의 사탕발림이라면 곤란하다. 진정으로 근로자를 위해 세제를 바로잡으려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계층의 소득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우선이다. 정권 초기에는 늘 탈세와 부패를 근절하겠다고 큰소리 치다 1년도 안 돼 흐지부지되곤 했다. 그래선 안 된다. 적어도 장부를 작성하고 세금거래서를 제대로 주고받는 정상적인 관행을 만들기 위해 정권과 정파를 초월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영업자의 반 이상이 장부를 작성하지 않고, 매출과 매입의 거래증빙을 챙기지 않아도 되는 소득세.부가가치세 특례를 두고선 그 어떤 슬로건이나 위원회도 소용이 없다. 소득세의 추계과세제도와 부가가치세의 간이과세제도를 없애는 것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근로자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근로소득공제를 확대해 면세점을 인상하기보다 특별공제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 좋다. 교육비와 의료비 등 근로자가 지불하는 각종 비용을 최대한 많이 공제해 주도록 특별공제의 항목과 한도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물가상승률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미국처럼 물가상승에 연동해 세율 체계를 조정하는 물가연동 소득세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더 이상 '근로자의 지갑은 유리지갑'이라는 사실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면서 일과성으로 임시방편을 내세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제대로 된 세금개혁을 논의하는 장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