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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가 나의 관심" 철강도시가 낳은 진보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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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조셉 스티글리츠가 최근 펴낸 『불평등의 대가』(한글어판)와 『배우는 사회를 창조하자 Creating a Learning Society)』(영문판) 책 표지 모습.

조셉 스티글리츠(72) 교수는 미국 인디애나주의 게리에서 태어났다. 유에스스틸의 주무대였던 철강도시였다. 그는 일상에서 파업과 해고, 근로자들의 가난을 보며 자랐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으로 택한 그는 경제학 교과서의 내용이 게리의 현실과 너무 다르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책에는 시장이 작동해 실업과 온갖 문제가 해결된다고 적혀 있었다. 그는 왜 시장이 실패하는가에 주목했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불평등의 원인을 파고들어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40여 년을 불평등 연구에 매진해왔다. 지난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으로 뜨긴 했지만 불평등 이슈의 ‘원조 전문가’는 누가 뭐래도 스티글리츠다.

 그는 대담에서 “나는 최상위 1%에는 관심이 없다. 그 아래 99%가 나의 관심”이라는 한마디로 학자적 집념을 압축 표현했다. “시장경제 프레임 안에서도 더 공평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중앙SUNDAY 2014년 8월 24일 자)는 그의 믿음은 불평등을 자본주의의 당연한 귀결로 보는 피케티와 확연히 구별된다.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의 악순환을 지목한다.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을 낳고, 정치적 불평등이 경제적 불평등을 더 확대시키는 법질서를 만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라는 그의 주장엔 울림이 있다. 그는 주류 경제학계가 존경하는 진보 경제학자다. 시장의 실패 원인을 찾고 대안을 제시했다. 주류경제학의 모델인 완전경쟁 시장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시장 참여자들 사이의 비대칭적인 정보가 자원 배분을 왜곡시키고 도덕적 해이를 일으킨다는 점을 규명했다. 이 같은 정보경제학을 개척한 공로로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스티글리츠는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주도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개발도상국을 어렵게 만든다며 신랄한 비판을 해왔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의 문제의식이 올바른 것이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됐다.

 그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세계은행(WB) 수석 부총재를 지냈다. 한국전쟁 후 최대 국난이라는 외환위기가 강타한 시기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고금리와 재정 긴축 처방이 한국 경제를 더 악화시킨다며 강력히 반대했다. 개도국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IMF의 고압적인 태도와 잘못된 정책을 줄곧 문제 삼다가 쫓겨나듯 WB를 떠나야 했다. 그러나 위기 이후 수면 위로 드러난 각국의 경제현실은 스티글리츠의 진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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