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빔 샀는데 휴지만 배달 … 작년 4만 명이 당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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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김병건(36)씨는 지난달 스마트빔을 사기 위해 한 중고 거래 사이트에 접속했다. 김씨는 ‘SK스마트빔을 스크린·삼각대·스피커 포함, 총 24만원에 판다’는 판매자의 글을 보고 문자메시지로 구매를 의뢰했다. 제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의심스러웠지만 6500원에 등기한 송장 사진을 보내줘 의심을 접고 24만원을 보냈다. 하지만 3일 뒤 배송된 박스에는 스마트빔은커녕 두루마리 휴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김씨는 “처음에는 잘못 온 게 아닌가 생각해 택배 보관함을 다시 들여다봤다”며 “판매자에게 수십 통을 전화해도 안 받아 그제야 ‘속았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중고물품 거래 피해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존의 쇼핑몰 등을 거치지 않고 개인 간 직접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셀프 구매족’이 늘어나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1년 3만2803건이던 인터넷 사기 적발 건수는 지난해 4만657건을 기록했다.

 중고물품 사기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사기 치기가 쉬워서다. 필요한 건 제품 사진 몇 장이면 된다. 직접 대면하지 않고 카카오톡이나 메신저, 문자메시지를 통해 입금을 받고는 물건을 배송하지 않으면 끝이다. 최근엔 송장번호 조회 등의 방법으로 미수에 그치는 경우가 생기자 엉뚱한 물품을 배송해 시간을 벌기도 한다. 당장 돈이 필요한 피의자들은 신분 노출을 감수하며 범죄를 저지른다. 지난 1월 말 사기를 당한 박모(33·여)씨는 갤럭시노트4를 사려고 온라인 중고장터에 접속해 매물을 내놓은 사람과 접촉했다. 판매자의 통장 사본과 주민등록증도 확인했다. 통장과 신분증이 도용됐을지 모른다고 판단해 판매자에게 “‘KKKJJJ’를 종이에 적은 후 이를 갤럭시노트4와 함께 들고 셀카를 찍어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판매자가 순순히 응해 철석같이 믿은 박씨는 51만5000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5일 뒤 배송 받은 택배에는 중고 휴대전화 대신 지나간 날짜의 신문만 담겨 있었다. 박씨의 신고로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사기범이 수십만원대에 암거래되는 대포통장이나 대포폰 등을 이용하면 검거도 쉽지 않다. 일선 경찰서 사이버수사팀의 한 수사관은 “지금 전국 사이버수사팀은 온라인 중고 거래 사기와 전쟁 중”이라며 “한두 건이 아니고 대포폰이나 대포통장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검거에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직거래 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소비자연맹 강정화 회장은 “송금 전에 판매자의 사기 전력 등 신뢰도를 확인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중고 거래 장터 사이트 운영자도 사기 예방을 위한 홍보와 개인 판매자의 신뢰도를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 등 보안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외에 ▶헐값 물건 주의 ▶추가 제품 사진 요구 ▶안전거래 시스템 활용 ▶공공장소에서의 대면 거래 등을 주문했다.

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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