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AO 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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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소련전투기에 의한 KAL기 추락사건의 진상을 조사해온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12일 채택한 조사보고서에서 사건의 최종책임을 전적으로 소련이 져야 할것이라는 결론을 가능케 했다.
우리는 이같은 문제를 공정하고 정확하게 다룰수 있는 능력과 권위를 지닌 국제기구는 ICAO뿐이고 소련은 이 기구의 33개 이사국의 하나인 책임회원국이며 이번 1백10회 총회에도 계속 참석했고 이날의 보고서는 KAL기사건에 대한 ICAO의 객관성 있는 최종보고서임을 특히 주목한다.
이번 보고서는 비교적 긴 편이다. 그러나 그 요점은 KAL기가 첩보임무를 수행했다는 흔적은 전혀 없고 격추에 앞서 소련이 요격절차를 취한바도 없으며 KAL기가 항로를 고의로 이탈한 증거도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결론은 그동안 소련이 애써 주장해온 격추의 정당성 근거를 정면으로 부인한 것이다.
한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KAL기의 항로이탈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점이다. ICAO전문가들은 그동안 기계의 결함이냐, 아니면 조작착오냐의 판점에서 세밀한 조사를 펴왔으나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해 이 점은 영구미제로 남게 되었다.
이제 남은 관심사는 소련이 ICAO의 조사결론에 어떻게 대응하여 사후잭임을 이행할 것인가하는 문제다.
사건발생 이후 소련은 당치도 않은 변설을 늘어놓으며 사건잭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고 ICAO조사단의 조사활동에 비협조적이었음은 물론, 이를 방해해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국제적 유권 기구에 의한 유권적 조사결론이 정식 발표된 이상 소련은 이에 적극 승복하여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미국과 함께 세계를 영도해 나가는 지도국으로서 국제관례에 따른 소임을 다해야 할것이다.
소련의 책임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ICAO의 한국측 수석대표가 『73년 이스라엘 전투기가 리비아 민간여객기를 격추했을 때 소련이 이스라엘의 책임을 규정한 ICAO결정에 각국이 협조하라고 주장한 사실』을 상기시킨 것은 적절한 것이었다.
소련은 우선 이번 사건의 책임을 시인하고 관계국가는 물론 국제사회전체에 대해 정중히 사과해야한다. 비록 사과한다해서 수중 고혼이된 영령과 그 유가족의 아픔을 달랠 길은 없다는 사실도 스스로 깨달아야한다.
둘째는 적절한 배상이다. 결과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지는것이 문명사회의 당연한 윤리다. 따라서 소련은 희생된 승객과 승무원에 대해서는 물론 관계국과 해당 항공사에 손해를 물어주는 절차에 스스로 참여해야 한다.
다음은 이같은 사건의 재발을 범치 않겠다는 국제적인 약속이다. 이를위해 소련은 관계자를 공개 문책하고 잘못된 규정들이 있다면 고쳐놓아야할 것이다.
항공회사의 당사국인 우리에게도 과제는 남아 있다. 우선 영구미제화된 항로이탈 원인을 우리로서는 계속 추적조사해서 이를 밝혀내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그것이 또 다른 불행을 방지하고 한때 문제됐던 항공사의 주의의무 태만이라는 가설도 불식될수 있는 방법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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