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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동 칼럼] 우리의 아픔 녹여주는 바흐의 슬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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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호 27면

바흐가 궁정악장으로 근무한 독일 쾨텐의 옛 성에 걸려 있는 레오폴드(1694~1728) 대공 초상화. 레오폴드는 바흐를 아껴준 군주였다. 최정동 기자

단골이 좋은 것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이발소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머리를 깎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라서 매번 설명해야 한다면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다. 나는 집에서 가까운 대중목욕탕의 이발사가 일 년이 되도록 ‘어떻게 깎아 드릴까요?’하고 묻는 바람에 그 목욕탕 이용을 포기했다.

[an die Musik] 바흐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사를 거듭하면서도 한 시간 반이나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까지 같은 이발관을 다닌다고 고백했다. 동그란 머리통에 머리숱도 별로 없는 사람이 유별나게 군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도 나름대로 머리카락 길이라든지 면도, 샴푸 등 요구사항이 많은 것이다. 어쨌든 단골 이발관에 가기만 하면 안녕하세요, 하고 의자에 앉아 졸고 있어도 완벽하게 일이 끝난다.

카페도 한 군데 정도는 단골로 두는 게 바람직하다. 늘 앉는 자리에 앉으면 말하지 않아도 늘 마시는 맥주가 나오고, 가끔은 계절과일을 푸짐하게 얻어먹기도 한다. 음악도 성가시게 적어 건넬 필요가 없다. 송창식의 ‘밤눈’, 샹송 ‘버찌가 익어갈 무렵(Le Temps Des Cerises,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 삽입곡)’이 적절한 순간에 흘러나온다. 밤이 깊고 손님이 뜸하면 나만을 위한 음악을 틀어 주는데 바흐의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 제5번(BWV 1018)의 1악장도 그 중 하나다.

이 곡은 바흐의 작품 중에서 그리 유명하지는 않다.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알아도 이 작품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언젠가 바흐에 대한 강연을 들으러 온 50여명의 청중에게 이 곡을 틀어 주고 아는 사람 손들어보라고 했더니 별 반응이 없었다. 음반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이스트라흐, 메뉴힌, 코간, 쉐링, 수크 등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대부분 전곡을 녹음했다.

오이스트라흐와 피쉬너의 소나타 5, 6번 음반.

바흐는 쾨텐 시절에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 여섯 곡(BWV 1014~1019)을 작곡했다. 조그마한 시골 공국에서 궁정악장을 지낸 쾨텐 시절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평균율 클라비아곡집’ 등 기악명작들을 쏟아낸 시기로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을 겪기도 했다.

바흐의 주인 레오폴드 대공은 의사의 권유로 가끔 온천목욕 여행을 했다. 온천장은 쾨텐에서 동남쪽으로 수백km나 떨어진 카를스바트(Karlsbad, 현재의 체코 카를로비바리)였다. 대공은 그의 악기인 궁정악장과 악단을 여행에 데리고 갔다. 바흐는 쾨텐 시절 두 번의 온천 여행을 다녀왔는데 두 번째 여행은 1720년 5월 말부터 7월 초에 걸쳐 이루어졌다.

한 달이 넘는 고단한 출장을 마치고 집에 들어선 바흐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 마리아 바르바라가 죽은 것이다. 출장이 길었던 탓에 이미 장례까지 끝나 있었다. 출발할 때 건강한 몸으로 배웅해 준 아내가 안개처럼 사라져버린 믿을 수 없는 현실. 황망한 가운데 며칠이 지나고, 열한 살부터 다섯 살까지 어린 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바흐는 사랑하는 아내가 떠났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숨죽여 흐느꼈을 것이다.
바흐 연구의 권위자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 여섯 곡이 마리아 바르바라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 사건 전후에 작곡되었고 쾨텐 시절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통렬한 슬픔을 드러내는 악상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1번 1악장과 5번 1악장은 듣는 사람을 눈물짓게 한다.

나는 단골 음반가게에서 이곡을 처음 들었다. 무거운 발걸음 같은 쳄발로 연주가 먼저 나오고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바이올린이 뒤따랐다. 빠른 속도로 음반을 넘기던 나의 손은 동작을 멈췄다. 처음 듣는 곡인데도 6분가량을 꼼짝도 못하고 끝까지 들었다. 오이스트라흐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한스 피쉬너가 쳄발로로 반주한 1번 1악장이었다.

그 뒤 다른 연주를 구하는 대로 들어봤는데 메뉴힌의 연주가 오이스트라흐에 근접했을 뿐 다른 음반은 큰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물론 기준은 바흐가 아내를 잃은 슬픔을 얼마나 잘 살렸느냐다. 오이스트라흐는 1950년대 후반에 피아니스트 오보린과 5번을 녹음하고 60년대에 반주자를 쳄발리스트 한스 피쉬너로 바꿔 전곡을 녹음했다. 그의 바이올린은 고음 현악기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폭넓은 소리를 내는데 듣기에 따라서는 울다 지쳐 목이 쉰 사람의 목소리로 들린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사내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공감하는 연주를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언젠가 광화문의 단골 카페에서 오이스트라흐와 오보린의 5번 1악장이 흘러나왔다. 밤늦은 시각이었고 나는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바이올린이 울다 지쳐갈 무렵 주인장이 턱으로 구석을 가리켰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마주보고 앉아 흐느끼는 남녀가 보였다. 가만가만 이야기를 나누던 커플은 음악이 흐르자 대화를 멈추고 곧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은 카페를 나서며 무슨 곡이냐고 나에게 물었다. 말없이 메모를 해서 건넸는데 남자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러나 얼굴엔 놀라움과 후련한 기색이 떠 있었다. 울고 싶을 때 울게 해주어 고맙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날 그들의 마음속 응어리는 눈물과 함께 녹아내렸을 것이다. 바흐의 슬픔은 오이스트라흐의 바이올린을 통해 우리의 아픔을 달래 준다.

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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