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잘 쏘는 한국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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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카타르에 출장 갔을 때 지역 축제를 찾을 기회가 있었다. 잘생긴 낙타 뽑기 대회, 조랑말 경주 등 토속적인 볼거리가 풍성했다. 거기서 한국인 일행은 카타르인들의 볼거리가 돼버렸다. 공기총 사격장에서였다. 30m 거리의 표적 5개를 맞추는 게임인데, 한국 일행은 모두 만점을 기록했다. 카타르인들이 놀란 표정으로 지켜봤다. 동행한 카타르 군 안내인이 “역시 한국 남자들은 모두 군대를 갔다와서 그런지 사격의 감이 있다”고 엄지를 추켜세웠다.

한국은 총기 소지가 자유롭지 않은 나라다. 소지 허가를 받아도 경찰서 무기고에 보관하고 수렵 허가 기간에만 반출해 사용할 수 있다. ‘술보다 총 구입이 쉽다’는 미국처럼 집집마다 총기를 보관하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실전 사격 경험과 총기 사용 친숙도는 세계 어느 나라에 견줘도 월등하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남자가 총기를 어느 정도 다룰 줄 안다. 군대 경험을 통해서다. 현역이 아닌 보충역 출신도 기초군사훈련 기간에 사격은 물론 총기 분해·결합을 배운다. 예비군 훈련장에서도 총을 쏜다.

지난주 연달아 두 건의 총기사고가 발생해 8명이 목숨을 잃었다. 두 사건 모두 재산을 둘러싼 갈등이 이유였다. 경찰 무기고에서 아무런 제재없이 엽총을 받아나와 그 길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도 같았다. 경찰의 총기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음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그 중 한 범인은 폭력·사기 등 6개의 전과가 있는데도 엽총을 소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27일에 뒤늦게 대책을 내놨다. 가정 폭력이나 이웃과의 다툼으로 입건 전력이 있는 사람에 대한 총기 수거·보관, 엽총 입·출고 지역 및 시간 제한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 정도론 부족하다. 민간인에게 허가된 총기는 1월 기준 16만3664정이다. 등록되지 않은 불법 총기류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도 없다. 서울 지역의 한 경찰 관계자는 "인터넷이나 모처에서 불법으로 개조한 총기류를 판매하는 곳이 여전히 있다”면서 “이 중에는 살상이 가능한 것들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불법총기류 자진신고 기간에 신고된 것만 2만 점이 넘었다. 이 중에는 사용 가능한 권총도 5점이 포함됐다.

어쩌면 수만 정이 될지도 모르는 불법 총기, 그리고 총기를 잘 다루는 남성들. 이런 조건에서 한국은 더 이상 총기 안전지대가 아니다. 게다가 분노 조절을 못한 탓에 벌어지는 폭력사고는 급증세다. 여기에 허술한 총기 관리체계가 방치되면 어찌 될 건가. 총기 소지 허가를 보다 까다롭게 만들거나, 반출 시 전문 상담교육을 받은 경찰관의 면접을 거치는 등의 보완책이 꼭 필요하다. 자칫 자기 목숨 지키기 위해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총을 소지하게 하자는 주장이 나올까 겁난다.

장주영 기자 jy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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