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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에 대한 오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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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사실 'APEC 때리기'는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데서 연유하지만 그 이유의 상당 부분은 APEC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APEC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포럼이다. 의결권도, 강제성도 없고 모든 결정사항은 만장일치제다. 21개 회원국은 일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미국)에서 2000달러 수준(베트남)까지 다양하고 경제.사회.문화적으로 이질성이 더 많다. 어느 한 나라가 독주하거나 이들을 하나로 묶어 누구의 '도구'로 삼는 것은 성격상 불가능하다.

APEC이 표방하는 '열린지역주의'의 '열린'과 '지역주의'는 얼핏 보면 서로 모순된다. 그러나 세계적 무역자유화로 나아가는 과도기적인 한 방편이 그 진정한 의미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자유화가 상대적으로 쉬운 나라들끼리 우선 자유화를 실현시키고, 이를 점차 확대시켜 나가자는 취지다. 자유무역블록은 '지역주의'로 보이지만 단계적으로 다른 나라 또는 지역을 참여시켜 나간다는 의미에서 '열린' 지역주의다. APEC은 동아시아의 지역주의로 출발했지만 태평양 건너 미국.캐나다.멕시코.칠레 등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지역블록의 성격은 더욱 옅어졌다.

APEC이 곧 세계화의 첨병이란 비난도 무리다. 세계화와 반(反)세계화의 이분법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세계화는 원하든 원치 않든 이미 우리 현실의 묵직한 일부다. 경제.무역 분야만이 아니고 빈곤과 불평등, 인종차별, 테러, 에너지난, 심지어 재해와 질병까지도 세계화가 급진전되고 있다. 각국 정상들이 언제 어디서 만나든 이들 지구적 문제에 비전을 공유하고 해결의 모멘텀을 마련함은 인류 모두를 위한 일이다. 껄끄러운 양국 관계가 정상 간 만남으로 풀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APEC은 서로에게 편리한 대화의 장(場)이다.

무역자유화가 강대국과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대변해 빈곤과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주장은 검증되지 않은 하나의 가설이다. 지난 20년간 통계는 교역으로 빈곤과 불평등이 도리어 개선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APEC은 투명성 확보와 부패방지 등으로 무역 거래 환경 개선에 주력해 왔을 뿐 무역자유화를 강제하지 않으며, 강제할 힘도 없다. 각국이 각자 형편에 맞게 행동하되 국가 간 조화의 틀 속에서 하자는 '조화된 일방주의(concerted unilateralism)'가 실천강령이다.

무역으로 먹고 살고,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와 개방자본주의를 자랑하는 한국이라면 개최국으로서 무역 및 투자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들고나와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세계화 진행에 따른 전 지구적 불평등' '사업하기 좋은 환경일수록 빈곤층이 시장에서 배제되는 경향' 운운하며 대통령부터 숲이 아닌 나무의 논리에 연연하는 현실이 보기에 딱하다.

변상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