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옛 안기부 자리 '공포' 대신 문화 향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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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14일 옛 안기부장 경호원들의 숙소 자리에 개관하는 산림문학관. 외벽이 통유리로 돼 있어 안에서도 남산의 정경을 볼 수 있다. 김성룡 기자

'남산'이란 은어로 불리며 군사독재의 공포를 대변했던 곳, 남산 옛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터가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서울시는 "사단법인 '자연을 사랑하는 문학의 집.서울'이 14일 중구 예장동 옛 안기부장 경호원 숙소 자리에 320평 규모의 산림문학관을 개관한다"고 13일 밝혔다. 기존 건물을 완전히 헐고 신축한 것으로 새 건물이 들어서기는 서울시가 1996년 안기부 터를 인수한 이후 처음이다. 산림청 산하 산림조합중앙회와 유한킴벌리가 14억원을 들여 건립해 시에 기부했다. 문학관 바로 앞에 있는 '문학의 집.서울'도 2001년 옛 안기부장 공관을 리모델링한 건물이다. 개관 당시 안기부 터에 들어선 첫 문화 공간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문학관 개관을 계기로 옛 안기부 터가 과거의 오명을 벗고 시민들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건물 리모델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학관은 외벽을 통유리로 해 남산 풍경을 그대로 볼 수 있게 했다. 안기부장 공관의 부속건물이었던 만큼 호젓하게 남산에 둘러싸여 있다. 문학관에는 강당.북카페.세미나실.영상실 등이 마련돼 있다. 발코니에서는 '문학의 집.서울'이 아담하게 보이고 그 너머에는 6층 건물이 있다. 역시 안기부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으로 소방방재본부가 쓰고 있다. 73년 10월 서울대 법과대 최종길 교수가 의문사한 옛 안기부 본관은 일부가 유스호스텔로 개.보수돼 다음해 3월 개관한다. 옛 안기부 건물 중에는 '만화의 집'이 들어와 운영 중인 곳도 있다.

산림문학관을 포함한 16개 건물은 안기부가 쓰던 것들이다. 이 건물들은 72년 준공됐으며 96년 안기부가 서초구 내곡동으로 옮겨가면서 서울시가 인수했다. 시유지이던 내곡동 부지를 내주고 남산 안기부 터를 받는 방식이었다. 97년부터 시는 부속기관들을 대거 이곳에 이전시켰다. 시정개발연구원.건설안전본부 등이 들어왔다가 다른 곳으로 이전했으며 현재는 문화재단.청계천복원본부.소방방재본부 등이 이용하는 등 사실상 서울시 분청으로 쓰고 있다.

인수 당시에는 2만5000여 평 부지에 33개 건물이 있었다. 시는 남산 제 모습 찾기의 일환으로 초소와 소형 벙커는 헐고 16개 동만을 남겼다. 각종 고문이 자행된 곳인 지하 3층짜리 대형 벙커도 그대로 개.보수해 소방방재센터를 입주시키는 등 그간 건물 외관을 거의 훼손하지 않은 채 사용해 왔다.

서울시의 안기부 터 사용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옛 안기부 본관이다. 중구청은 2001년 남산공원의 일부인 옛 안기부 본관은 도시공원법에 맞게 사용돼야 한다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시가 사업비 70억원을 들여 이 건물을 유스호스텔로 개.보수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옛 안기부 본관 건물의 절반은 유스호스텔로, 나머지는 청소년 정보 도서관으로 이용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안기부 터를 역사적 기념물로 보존할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양금식 팀장은 "시 마음대로 사용할 게 아니라 역사적 현장으로 보존해 민주주의와 인권 교육의 장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옛 안기부 터의 변신 작업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권근영 기자<young@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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