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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들 "가운데로 … 가운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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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열린우리당은 4일 당정협의에서 대기업의 수도권 공장 신.증설을 내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허용키로 했다. 재계의 요구에 따라 특정 시장 규제 정책을 푼 것이다. 이런 입장 변화는 10.26 재선거 참패 이후 내년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표심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됐다.

#2. 한나라, 친재벌 이미지 벗어나기

한나라당은 9월 강령 개정안에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 남용과 하도급 횡포를 엄단하고…건전한 기업지배구조를 확립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개정안을 만든 당 혁신위 관계자는 "'한나라당=재벌옹호당'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차기 대선에서 승산이 없다"고 했다.

#3. 민노당, 북한 성역 허물기 움직임

민주노동당 박용진(34) 전 대변인은 최근 언론 기고에서 "진보정당에 불가침 성역이 존재해선 안 되는데 민노당 내부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과 문제 제기는 불경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당 강령에 위배되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발언에 대해서조차 한마디 문제 제기를 못하는 정당을 지지할 국민은 없다"고 썼다. 10.26 재선거 패배 이후 민노당에 불고 있는 변화의 기운이다.

'집권을 위해서라면, 유권자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요즘 각 정당의 생존 제1법칙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강점을 모방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정당들의 노선이 중도로 모이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중앙일보가 강원택 숭실대 교수팀에 의뢰해 37개 주요 정책에 대한 5개 정당의 입장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한나라당(-0.04)은 한가운데의 중도, 민주당(-0.67)과 열린우리당(-0.88)은 중도 진보(중도 좌파)성향인 것으로 나타났다. 민노당(-1.88)은 매우 진보(매우 좌파)였으며, 자민련(+0.63)은 중도 보수(중도 우파)였다.

-2는 가장 좌파적이고, 0은 중도, +2는 가장 우파적인 점수다. 37개 정책은 중앙선관위가 최근 각 당에 찬반 입장을 물어봤던 조사 내용으로 이 중 24개 정책에서 이념구분이 가능했다(본지 11월 8일자 8면 참조).

이를 세분화하면 주요 정책들 중 특히 정부의 '시장 개입'분야에서 열린우리당(-1.3)과 한나라당(-0.8)의 입장은 아주 근접했다. 양쪽 모두 중도 좌파적이고 이념성향의 차이는 0.5점이었다. 양당은 예컨대 '부동산 보유세 인상'이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고교 평준화 유지'등에 찬성하거나 조건부로 찬성했다.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이 유권자의 다수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제 현안에서 열린우리당과 비슷한 목소리를 낸 것은 노선 수렴의 대표적인 사례다. 한나라당의 보수그룹 쪽에선 이런 수렴 현상에 "당의 뿌리를 흔드는 반시장적 포퓰리즘"이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인터넷의 많은 사이트에선 "한나라당이 웬일이냐"는 칭찬이 잇따르기도 했다. 최근 박근혜 대표는 반시장적이란 비판을 무릅쓰고, 쌀 협상 비준안 처리를 미루자는 민노당 주장에 동의한 바 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지난해만 해도 국가보안법.과거사법.사학법 등 진보적 색채가 뚜렷한 법안으로 한나라당과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러나 올 들어 체감경기 부진이 이어지고 선거 패배가 잇따르면서 실용주의 시장노선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 문희상 당의장-정세균 원내대표 체제(현재는 임시 당의장 체제)였을 때 열린우리당은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과거 분식행위를 집단소송 대상에서 한시적으로 제외하는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기업도시개발특별법▶기업활동규제완화특별법 등 친기업 정책을 입법화했다.

한편 강원택 교수팀에 따르면 자유를 중시하는가, 질서를 중시하는가를 분석한 '사회질서'분야에서 열린우리당(-0.67)과 한나라당(+0.5)의 이념성향 격차는 1.17로 시장 개입 분야에서보다 컸다. 북한에 대해 유화적인가, 엄격한가 등을 따진 '안보정책'분야에서 열린우리당(-0.6)과 한나라당(+1.75)의 격차는 2.35로 가장 컸다. 이 분석 연구엔 임성학 서울시립대, 서현진 성신여대 교수가 참여했다.

박소영.김정하 기자

*** 바로잡습니다

11월 14일자 1면 머리기사 위의 '정책 분야별로 5개 정당의 이념점수를 매겨 봤더니'란 그래픽에서 '물질중시 태도'의 한나라당 이념점수가 -0.1로 표기돼 있으나 잘못 기록한 것으로 -1.0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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