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 우리집 주·치·의] 암환자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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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그러나 인터뷰를 마친 뒤 기사를 쓸 때 혼자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납니다. 암을 극복했다고 요란스레 매스컴을 장식했던 사람들이 속절없이 숨지는 장면을 많이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암은 치료 후 5년까지 생존해야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치료후 3년밖에 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치료 후 암 덩어리가 사라졌다가도 재발해 생명을 잃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박사는 치료 후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재발하지 않고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이젠 정말 완치란 말을 써도 되는 것이지요. 그는 고희를 넘긴 말기 간암환자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정한 모습이었습니다. 은퇴 후에도 산학정 정책과정 원장으로 기업체 강의 등 교육사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 박사의 사례에서 다음 세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째, 낙관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1997년 직경 14cm의 간암 발견, 1998년 수술후 2개월 뒤 폐로 전이, 예상 5년 생존율 5%.' 진단 당시만 해도 그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을 95%보다 살 5%의 확률을 믿었습니다. 투병 도중 들쭉날쭉 변덕을 부리는 검사 수치에도 일희일비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평정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한 박사는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고 했습니다. 어차피 뿌리뽑을 수 없는 존재라면 성내지 않도록 잘 달랜다는 뜻입니다. 암세포와 더불어 평균수명까지 살면 된다는 전략이지요. 암은 지레 겁먹고 자포자기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반대로 적개심을 갖고 무조건 몰아내겠다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나친 투쟁심은 면역력을 떨어뜨려 암세포의 증식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의료진을 믿어야 합니다

자신을 불신하는 환자에겐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공격적 치료보다 현재 위기만 모면하고 보자는 소극적 치료를 선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최선의 치료를 위해선 만의 하나 부작용까지 감수할 수 있다는 신뢰를 보여줘야 합니다. 민간요법에 매달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한 박사는 암에 좋다고 알려진 시중의 민간요법은 일절 거부했다고 합니다.

암은 생각보다 흔한 병입니다. 진단받지 못한 채 죽는 사람까지 감안하면 한국인은 현재 2명 중 1명꼴로 일생에 한번 이상 암에 걸립니다. 그러나 암은 불치병이 아닙니다. 전체 암환자의 절반은 완치됩니다. 대개 조기발견에 성공한 사람들이지요. 그러나 뒤늦게 발견한 사람이라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합니다. 한 박사의 사례에서 보듯 말기라도 치유의 기적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족 하나만 답니다. 서울대병원장이니까 남다른 치료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한 유명인사만 따로 받는 항암제나 암수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도 5FU와 시스플라티눔이란 평범한 항암제가 투여됐을 뿐입니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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