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107억 빼 생활비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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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검찰은 "두산그룹 총수 일가가 보유한 지분이 2005년 7월 현재 두산산업개발 7.52%, ㈜두산 18.22%, 두산중공업 0.02%인데도 그룹 경영 전반을 장악해 기업을 총수 일가의 사금고처럼 운영해 왔다"고 밝혔다.

◆ 비자금도 상속비율로 분배=총수 일가는 1996년부터 6남매가 개인적으로 사용할 비자금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협의했고, 조성된 비자금을 고(故) 박두병 초대 회장이 작고할 당시 유산을 분배한 비율대로 나눠 가졌다.

박 초대 회장은 '1.5(장남):1(아들):0.5(딸)'의 비율로 유산을 나눠 갖도록 유언했다는 것이다.

박용오.용성 전 회장 등은 이 유언에 따라 매달 생활비 명목으로 600만~700만원씩 나누고 매년 5월에는 8000만원씩 분배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매달 지급되는 생활비는 개인통장으로 입금됐고 1년에 한 번 주는 8000만원은 운전기사를 시켜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빼돌린 생활비 명목의 회사 자금은 107억원. 검찰은 "이 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였는지 자세한 추적은 불가능하지만 불법 정치자금이나 로비자금으로 사용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용오.용성 전 회장 등은 두산산업개발에서 조성한 비자금으로 일가가 대출한 293억원에 대한 이자 139억원을 대납하기도 했다. 또 가족 세금 납부 등 공동경비로 37억원, 회장단 잡비 명목으로 3억원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분배금을 받지 못한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은 계열사 ㈜넵스를 통해 40억원을 빼돌려 석가탄신일 등에 15억원을 사찰에 시주하기도 했다.

검찰은 "박용오.용성 전 회장이 두산산업개발과 위장 계열사들을 통한 비자금 조성을 맡아 처리했고 박용성 전 회장이 가족의 금고지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박용성 전 회장의 장남 박진원(37) 두산인프라코어 상무는 부동산 등 가족 공동의 재산과 비자금을 도맡아 관리했으나 기소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 박용성 전 회장 덕에 모두 불구속=검찰이 총수 일가 네 명을 전원 불구속 기소키로 한 데는 박용성 전 회장의 입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국제상업회의소(ICC) 회장이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박 전 회장이 구속될 경우 국익에 상당한 손실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백억원을 횡령한 박 전 회장 등에게 법과 원칙의 잣대를 들이대면 구속할 수 있으나 수사 외적인 요인을 고려해 선처했다는 뜻이다. 지난해 검찰은 세계태권도연맹과 국기원 등의 공금 38억여원을 횡령함 혐의로 IOC 부위원장이었던 김운용씨를 구속 기소했다.

검찰 조사 결과 박 전 회장은 총수 가족의 '집사' 역할을 해 오면서 재무 관리 전반을 맡아 왔고 비자금 관리를 해 왔다. 사실상 그룹 비리의 정점에 박 전 회장이 있었던 것이다. 박 전 회장을 불구속하는 마당에 다른 형제들을 구속할 명분이 없다고 검찰은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문병주 기자

비자금 366억 … 326억 횡령 혐의 기소

박용성(65) 전 두산그룹 회장 등 총수 일가가 회삿돈 286억원을 빼돌려 생활비 등에 쓴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박 전 회장 등 총수 일가 4명과 그룹 계열사의 전.현직 대표 10명 등 모두 14명을 특별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횡령 등 혐의로 10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회장과 박용오(68) 전 그룹 회장, 박용만(50) 전 그룹 부회장 등 삼 형제는 두산산업개발 등을 통해 협력업체에 공사비를 과다지급한 뒤 차액을 돌려받는 수법 등으로 1995년부터 최근까지 326억여원의 비자금을 조성, 이 중 286억원을 횡령한 혐의다.

삼 형제는 또 두산산업개발의 매출액을 과대계상하는 수법으로 2838억원을 분식회계한 혐의도 받고 있다. 두산그룹에서 분가한 박용성 전 회장의 막내동생 박용욱(45) 이생그룹 회장은 자신이 경영하는 ㈜넵스를 통해 4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 횡령한 혐의다.

비자금은 총수 일가의 생활비와 유상증자를 위한 대출금 이자, 가족공동경비 등에 쓰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박용곤(73) 그룹 명예회장의 회장 재임 시기인 90년대 초에도 48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공소시효(10년)가 지나 기소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천정배 법무장관은 이날 광주고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불구속 수사원칙은 피의자의 신분에 관계없이 지켜져야 한다"며 "두산그룹 사건 관련자 불구속 기소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혜수.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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