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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안의 가치는 절대성 아닌 횡단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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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20세기 한국사회를 돌아볼 때 이념이라면 신물이 날만도 하건만 학자들은 21세기 들어서도 이념을 얘기한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20세기엔 상대를 비판하기 위한 이념이 넘쳤다면, 21세기엔 그와 반대로 상대와 대화하고 대립을 풀기 위해 이념을 얘기한다.

대립과 충돌의 악순환을 끊고 평화와 공영의 새 시대를 열 수는 없을까.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각종 지역분쟁, 색깔논쟁 등이 끊이질 않았던 20세기를 마감하며 지식인들이 내건 화두다.

경희대 네오르네상스문명원(원장 조인원)이 11~12일 개최하는 국제학술대회에서도 이 화두를 놓고 해법을 모색한다. 주제는 '이념 이후의 시대, 21세기 대안문명을 말한다'. 11일 오전 9시~오후 5시30분엔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12일 오전 9시30분~11시30분엔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그리고 12일 오후 6시30분~7시50분엔 워커힐호텔 오키드홀에서 각각 토론회가 열린다.

미국 모라비언대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는 정화열 교수가 11일 첫 발제자로 나선다. 미리 배포된 발제문에서 그는 서구의 중세와 르네상스를 비교했다. 중세엔 절대성을 추구하는 '성직자적 지식'이 주류였던 반면, 르네상스 시대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광대적 지식'이 선호됐다고 한다. 르네상스 시기에 문학.음악.미술.건축 등 다양한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던 것은 바로 절대성을 배제했기 때문이며, 그같은 정신을 오늘날 탈근대주의(포스트모더니즘)에서 다시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근대는 비판과 극복의 대상이다. 정교수에 따르면, 근대는 르네상스 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절대성을 추구한 것이 잘못이다. 나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하면 그는 근대적 인물이라는 뜻이 된다. 근대 계몽주의가 그랬고, 오늘날 미국이 미국식 민주주의의 확산을 일종의 종교적 의무로 생각하는 것도 예외가 아니라고 했다. 서구 중심적, 이성 중심적, 남성 중심적, 인간 중심적 사고는 근대성이라는 이름으로 비판의 도마에 오른다. 근대성에 밀린 동양적인 것, 몸, 여성, 자연과 같은 것들은 다시 회복해야할 가치로 제시된다. 그는 절대성에 맞설 개념으로 횡단성을 제시했다. 다문화주의, 지구화 시대에 다양한 문화의 교환과 가치관의 공존을 전제해야 한다는 말을 횡단성으로 표현했다.

두번째 발제자로 나선 캐나다 맥길대 존 홀 교수는 정 교수와는 다른 관점으로 근대의 이데올로기를 분석했다. 그는 "냉전은 끝났어도 근대의 여러 이데올로기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면서 "민족주의와 제국주의가 새로운 양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문명간 충돌 현상도 갈등의 불씨다"고 했다. 그는 서구 근대의 산물인 자유민주주의 제도와 과학.산업의 가치를 강력히 옹호함으로써 갈등의 위기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프린스턴대 존 아이켄베리 석좌교수, 조셉 리드 UN 사무차장, 이노구치 다카시 일본 추오대 교수 등도 방한해 토론에 참여할 예정이다. 한국에선 김여수 경희대 NGO대학원장, 김홍우 서울대 정치학 교수,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이사 등이 참석한다. 02-961-0995~6.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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