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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발사」영송여사 뇌일혈로 쓰러져 사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6·25의 전란으로 폐허가된 서울의 청계천변에 면허도 허가도 없는 천막이발소가 문을열었다. 무면허이발사는 28세의 일본인 처녀「나가마쓰」(영송)씨. 그로부터 30여년세월동안 사랑의 가위질을 하면서 1백33명의 한국전쟁고아들을 양육해온 사람의 이발사 「나가마쓰」(57)여사가 6일 상오 서울낙원동102자택에서 뇌일혈로 쓰러져 백병원에 입원했으나 사경을헤매고있다.
「나가마쓰」여사는 지금도 고아3명과 함께 살고있는데 최근 지병인 간염과 위염이 악화되어 고생해온데다 그동안 고아들을 양육하느라 진 빚때문에 고심해 왔었다는것. 서울백병원 중환자실 「나가마쓰」 여사의 병상에는 그동안 그녀가 키워서 시집보낸 10여명의 고아들이 찾아와 애타게 어머니의 소생을 기도하고 있으나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나가마스」 여사의 고향은 일본 도오꾜. 2차대전중인 6세때 만주에서 부모를 잃고 한국으로 건너와 지내다 6·25를 만났다. 전쟁이 한창 치열하던 어느날 38선근처에서 한 어린고아를 만났다. 부모없이 자란 슬픔을 뼈저리게 느껴온 그녀는 『이 전쟁고아들의 어머니가 되자』고 결심했다. 이렇게 하나둘 맡기 시작한 자식들이 그동안 1백33명으로 불어난것.
그녀는 64년에는 서울시장으로부터 명예시민증을, 67년에는 제1회광복상을 수상하기도했다. 또 71년에는 국민훈장동백장을 받는 영광을 차지했다.
그녀의 얘기는 『이땅에 저 별빛을』이란 수기를 통해 일본에 알려져 76년에는 「요시까와·에이지」(길천영치)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나가마스」 여사의 본성은 「모찌즈끼」(망월). 그러나 6세때 고아가 되어 「나가마스」란 성을 사용해오다가 지난 82년 일본가정재판소에서 호적정정판결을 받아 본성인 「모찌즈끼」를 되찾기도 했다.
그녀는 최근들어 질병과 경제걱 곤궁, 그리고 정신적갈등의 3중고 속에서 시달려왔다고 측근들은 말한다. 지난 77년6월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이발소가 문을 닫게되면서 가계가 쪼들리자 집안에서 작업용 흰장갑을 만들어 생계를 꾸려왔다. <한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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