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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믿음]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말 '맑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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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남도 삼천포 사천의 이순신 바닷길을 다녀왔다. 나라가 위험에 처할 때 이 바다를 적은 숫자의 배로 왜군을 막아 지켜냈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파도와 물결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듯 일렁였다. 소금기 물씬 풍기는 바닷물결 풍광은 습습한 향기가 오히려 좋다. 그래서 겨울바다는 아름다운 대자연의 명상이 된다.

바위길 모퉁이 언덕 위엔 시인 박재삼 선생의 기념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시절에 그의 시집을 가방에 넣고 다녔었는데, 여기서 그를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반가움에 얼른 기념 전시장에 들러 유리창 불빛을 통해 그의 시를 읽어봤다. “진실로 진실로 세상을 몰라 묻노니, 별을 무슨 모양이라 하겠는가. 또한 사랑을 무슨 형체라 하겠는가.” 30년 전 쓰인 시지만 마음이 편안해졌다. 왜 별은 깊은 밤에 반짝이며 자신을 지키고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했다.

돌아와 서재에 꽂혀 있는 몇 년된 책들을 정리했다. 비우는 일은 단순하고 맑아야 한다. 이제는 책을 보는 시간보다 사색을 하는 시간이 좋다. 가끔 글을 쓰다 쓸 글이 없을 때, 차를 몰고 어디론지 떠난다. 그건 자연이 말하는 내용을 담기 위해서다.

지금부터 30년 전 이야기다. 우리 동기생 교무가 서울의 모교당에 처음 발령을 받아 왕초보로 설교를 했다. 법당 맨 뒷 뒷줄에는 수행심 깊은 회장님의 사모님이 눈을 지그시 감고 설교를 듣고 있었다고 한다. 의기 충만한 마음으로 좋은 말만 골라 “깨달음이 무엇이며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등에 땀이 나도록 설교를 한 뒤, 자기 방으로 갔는데 밖에서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그 할머니 교도님이 조용히 노크를 했던 것이다.

설교에 대해 잘못된 것을 말해주러 오신 줄 알고 얼굴이 상기돼 있었는데, 그 할머니 교도님은 빙긋이 웃으며 “오늘 설교 참 좋았어요, 그렇게 하시면 앞으로 큰 법사님 되겠어요”라고 말씀하시곤 총총히 돌아가셨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부끄러운 헛소리에 불과했지만, 그 교도님은 초보 교무의 정성스러운 모습에 기를 살려주려고 일부러 발걸음을 했을 것이다. 지난해 그 교도님은 이 세상과 이별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말은 ‘맑다’가 아닐까. 생을 종교에 헌신하며 단순하게 사는 사람의 얼굴은 해맑기 그지없다. 정리된 가난함을 스스로 택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 하동 매화 마을에 갔을 때도 섬진강변 매화꽃을 바라보며 비구니 스님 두 분이 정답게 소곤소곤 나누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생각했다. 꽃은 피어 있을 때보다 떨어질 때가 더 아름답고, 사람은 머물 때보다 떠날 때가 더 멋있으며, 공부하는 종교인은 무심할 때가 맑고 깊은 법이다. 누군가는 ‘쉬는 게 깨달음’이라 했지만 마음이 쉬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쉬지 못하는 것은 '내가 아직 헛 살았구나'라고 고백하게 한다. 그것이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번뇌이며, 쓴 나물 뿌리를 씹듯 괴로운 일이기도 하다.

고백하건대 요즘 녹차를 달여도 맞이할 친구가 없다. 이것이 나에게는 맑은 가난함일지…. 침묵보다 더 좋은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정은광 교무

정은광 교무 정은광 원광대 미술관 학예사. 미학을 전공했으며 수행과 선그림(禪畵)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마음을 소유하지 마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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