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품공세에 혈연·지연까지 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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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우수한 두뇌와 기술인력 유치를위한 스카웃경쟁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기업간의 건전한 인력유치경쟁으로서의 스카웃은 오히려 바람직스럽다. 그러나 스카웃이 건전한 인력유치경쟁 차원을 넘어설때 문제가 생긴다. 77∼78년의 호황기때 우리기업들은 치열한 스카웃경쟁을 벌였다. 그리고 79년을 고비로 경기가 침체의 늪에 빠져들자 종업원을 집단해고하는 정반대현상이 속출했다. 그러다가 올들어 경기가 다소 회복국면에 접어들면서 섬유·전자·호텔등 일부업종에서 서서히 과열 스카웃열풍이 일기시작한 것이다. <김창욱기자>

<실태>
지난해 섬유경기의 부진으로 가동율이 50%선까지 떨어졌다가 올들어 활기를 되찾고있는 대구섬유공단은 과열스카웃 바람이 부는 고시지역. 지난4월초 대아직물은 일신직물에 근무하는 기사 김모씨와 숙련기능공등 11명을 스카웃 해가는 바람에 일신직물의 직조기 1백10대가 1주간 가동을 못해 조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노동부대구지방사무소의 한관계자는 『직물공장은 1명의 기사밑에 6∼7명의 직수가 있는데 이들이 서로 혈연·지연, 심지어는 애인관계로까지 밀착되어있기 때문에 상급자인 기사가 자리를 옮기면 줄줄이 따라 옮기는 바람에 조업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직물 기사 김모씨의 경우는 보수·직급을 올려준다는 조건으로 자신이 먼저 이동한후, 2차례에 걸쳐 휘하에 있던 직수10명을 빼돌린 것이다.
지난5윌 경민직물은 동종업체인 명성섬유의 간부2명과 기능공6명을 스카웃하면서 간부2명에게는 3백만원의 보상금과 보직승격까지 약속했다. 노동부 진상조사과정에서 이 보상관계는 관련자의 부인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간부급등 고급기술진을 스카웃할때 거액의 보상이 따르는것은 관례로 통용되는 실정이다.
섬유업종은 다른 업종보다 이직률이 높다. 때문에 섬유업체가 들어서있는 구미공단의 새한직물단지와 효성협업단지 입구에는 「면회사절」이라는 표지를 붙이고 경비원을 보강,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는등 「기능공보호작전」을 펴고있다.
기업의 스카웃경쟁은 「경력기능공 빼돌리기」 「고급기술인력빼돌리기」등 크게 2가지 형태가있다. 마산수출자유지역에 있는 K전자회사는 지난2윌 필수요원인 기술자2명을 같은 업종인 인근B회사에 빼앗겼다.
K회사는 이들을 일본에까지 연수시켜 1급기술자로 양성했는데 경쟁사인 B회사에서 윌급을 10만원씩 올려주기로 하고 이들을 빼내간 것이다.
또 컴퓨터임대용역을 하는 서울M사는 최근 H그룹에서 컴퓨터프로그래머6명을 몽땅 스카웃해가는 바람에 l개윌동안 정상업무를 하지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회사측은 전문프로그래머 1명을 양성하려면 대학졸업자의 경우 2∼3년의 교육기간이 필요한데 일부기업들이 이처럼 남이 길러놓은 기술인력을 빼돌리는 행위는 마땅히 제재가 가해져야한다고 비난했다.
서울의 지하철시대가 열리면서 지하철공사경력사원에 대한 스카웃열기도 대단하다. 지하철공사는 서울지역의 지층상태·암반지역·토질·지하수의 깊이등에 관한 사전지식이 있는 유경험자가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경쟁업체가 보수·직급 인상등을 조건으로 경력사원 빼돌리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책>
노동부는 스카웃하거나 ▲이직(이직)할 의사가 없는 근로자를 금품공세로 유혹하거나▲일시에 다른공장 주요부서의 근로자를 한꺼번에 빼내옴으로써 해당공장의 생산활동을 마비시키는 행위▲스카웃을 통해 기술정보를 입수, 경쟁회사의 거래선을 침식하는 행위등을「부당 스카웃」으로 보고 집중단속하는 한편 직업안정법을 적용, 최고 1년이하의 징역이나 1백만원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고있다.
이밖에 퇴직을 원하는 근로자는 30일전에 미리 근로자에게 퇴직예고를 하는 「30일전 퇴직예고제」를 권장, 근로자가 일시에 퇴직함으로써 야기되는 생산활동위축등 부작용방지에 애쓰고있다.
이와함께 올들어 건설협회·전자공업진흥회둥이 부당 스카웃방지를 위한 자체협약을 체결했으며 호텔·관광업계도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있다.
전국5백여개 전자회사가 회원인 전자공업진흥회는 지난 3윌28일 「부당스카웃방지조정위원회」를 설치, ▲6개윌이상 근속한 종업원이 타업체로 옮길때는 전직업체의 추천서를 받아야한다. ▲제품개발·생산·영업·기획부문의 핵심요원이거나 회사의 지원으로 1개윌이상 해외연수, 학비지원등을 받은 사람이 해당회사의 동의없이 퇴직하면 1년이내에 다른 회사에 취업할수없다는 등의 자체규약을 마련, 시행중이다.

<문제점>
부당스카웃업체에 직업안정법을 적용, 처벌하는 것은 정부의 고육지책이다. 사실상 직업안정법에는 부당스카웃에대한 처벌규정이 없다고 봐야한다. 노동부는 이법 12-13-31조를 근거로 「신고또는 허가 없이 근로자를 윌10명이상 비공개로 모집할때는 l년이하의 징역 또는 l백만원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있다. 그러나 이것은 근로자를 모집하는 업주가 지켜야하는 「신고」나 「허가」규정일뿐 부당스카웃의 내용을 명문화한 처벌규정이라고는 볼수없다.
때문에 부당스카웃업체에 직업안정법을 적용, 처벌하는것은 다소 무리가 따른다.
또 어느 선까지를 부당스카웃으로 봐야하느냐 하는점도 문제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9월1일 개관한 서울힐튼호텔이 경력사원을 모집하면서 야기된 호텔업계의 「부당스카웃 시비」다. 힐튼호텔측은 지난 5, 6윌에 신문에 사원모집공고를 내고 2차례에 걸쳐 모두7백30명의 종업원을 채용했다. 이때 서울의 1류호텔인 롯데(51명), 신라(36명), 워커힐(31명), 하이야트(40명), 플라자(13명) 등에서 경력사원 l백7O여명이 힐튼으로 직장을 옮겼다.
경력사원을 무더기로 빼앗긴 4개호텔 대표들은 지난 9월5일 힐튼측은 일반적인 관례를 벗어난 30∼40%의 급여인상및 파격적인 승진조건을 내세워 부당한 인력스카웃을 했다고 주장, 전원을 복귀시키도록 노동부에 진정했다.
반면에 힐튼호텔측은 사원모집은 신문광고를 통한 합법적인 공개채용이며 채용된 사원들이 복귀의사를 밝히고있지않아 돌려보낼수 없다고 맞서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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