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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기자 11명의 첫 현장 … 그곳에 간 11가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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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중앙일보·JTBC 신입기자들이 설을 맞아 한복을 입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신입기자의 눈에 비친 11곳의 풍경엔 2015년 한국 사회의 빛과 그림자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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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아 편하게 백민경 (개봉동 가정어린이집)

 서울 개봉동의 가정 어린이집입니다. 제 좌우로 있는 쌍둥이의 이름은 김우현·진현(4). 아빠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엄마는 회계사입니다. 쌍둥이는 곧 어린이집을 졸업합니다. 하지만 아직 유치원 배정을 못 받았다네요. 엄마·아빠의 한숨은 깊어만 갑니다. 국가가 일터에 있는 부모 마음 하나 편하게 해주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요.

2. 익숙한 낯섦 백수진 (이태원)

 한복 차림으로 서울 이태원 퍼브에 들어섰습니다. 알록달록한 한복이 신기한 듯 외국인 남성 3명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더군요. 왼쪽부터 데이먼(40·미국), 테리(35·캐나다), 마이크(37·캐나다)입니다. 지난해 국내 거주 외국인이 175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이태원 거리에서 한국 속의 세계, 세계 속의 한국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3. 늙음은 밝음 김나한 (허리우드 실버 극장)

 서울 종로의 ‘허리우드 실버 극장’에서 서대남(74)·박가일(75)·한광수(68)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사진 왼쪽부터). 옛 영화를 보러 온 어르신들의 표정이 해맑습니다. 나이 듦은 낡음이 아니라 밝음입니다. 고단한 삶을 통과하며 마음의 눈과 귀가 밝아진 이들이 바로 어르신들입니다. 우리 사회가 어르신들의 지혜에 더 많이 귀를 기울였으면 합니다.

4. 32년 전 초심 송우영 (흑석시장 신미순대)

 서울 흑석시장의 순대국밥집 앞입니다. 주인 할머니는 순대를 삶고 자르며 32년간 이 식당을 지켜왔다고 합니다. 20년 넘는 단골도 많다네요. “국물 얼큰하다”는 손님들의 말에 할머니는 호탕한 웃음으로 화답합니다. 7000원짜리 순댓국 한 그릇으로 서민들이 마음을 나누는 풍경이 뭉클했습니다.

5.청년 일자리 박병현 (종로 낙원재래시장)

 서울 종로구 낙원재래시장의 한 속옷 가게 앞입니다. 요즘 청춘들에겐 취직해서 부모님께 내복 한 벌 사드리는 게 요원한 꿈입니다. 올해 청년 실업률은 9.2%로 사상 최악이라고 합니다. 종로 거리에서 마주친 수많은 청춘들의 얼굴도 잿빛이었습니다. 청춘(靑春)은 푸른 봄이란 뜻인데…. 100만 취업준비생들에게도 봄이 찾아올까요.

6. 권력 감시견 최규진 (국회)

 제가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동안 여야는 총리 인준 문제를 놓고 서로 삿대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추운 날씨만큼 정국도 얼어붙었습니다. 정치인들은 종종 국회 권력이 제 것인 양 착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회를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이유입니다.

7. 약자의 시선 임지수 (지하철 광화문역)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를 탔습니다. 제 친구 지용(26·뇌병변1급)이가 자주 이용하는 시설입니다. 지용이는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장애는 기다림이야.” 리프트 호출벨을 세 번은 눌러야 겨우 나오는 지하철 역무원을 보면서 말입니다. 새해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 받는 이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8. 삶에 숨통을 박현주 (청계천)

 “청계천에만 오면 마음이 탁 트이는 느낌이에요.” 청계천에서 만난 많은 시민이 이 같은 말을 했습니다. 청계천은 지친 일상의 충전소 같은 곳입니다. 인공으로 조성된 하천이지만 서울 도심에 이렇게 탁 트인 공간이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새해엔 청계천과 같은 마음으로 한숨 돌리며 살아가는 시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9. 매의 눈으로 이선화 (서울 남산 N타워)

 서울 남산 N타워에 올랐습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서울 풍경을 찍으며 말했습니다. “퍄오량(漂亮·아름답다)!” 남산 꼭대기에서 한눈에 내려다본 서울은 과연 화려했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화려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팍팍하기만 합니다. 올해는 서울의 도로들처럼 꽉 막힌 서민 경제가 뚫리길 기원해봅니다.

10. 옛것의 향기 공다훈 (인사동 관훈고서방)

 올해로 개점 27년째인 서울 인사동 관훈고서방은 오래된 책들이 풍기는 냄새로 그윽합니다. 오랜 세월이 빚어낸 지식의 향기라고 할까요. 새롭고 빠른 것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고서점은 고뇌하는 역사가처럼 묵묵한 표정입니다. 온갖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뒤에도 살아남았으므로 고서는 단단한 책입니다. 고서점에서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의 가치를 되새겨봅니다.

11. 묵은 때 벗겨 김민관 (신촌 대중목욕탕)

 서울 신촌의 한 대중목욕탕에서 서민들의 ‘묵은 때’와 마주쳤습니다. 취업준비생 김정호(27)씨는 지난해에만 미끄러진 기업이 25곳이라고 했습니다. 은퇴를 앞둔 박철원(55)씨는 용돈 수준인 국민연금 앞에서 막막해집니다. 서민이란 김씨나 박씨처럼 먹고사는 문제로 걱정하는 이들입니다. 정치인들은 서민들의 묵은 때를 알기나 한 걸까요. 목욕탕에만 가도 한숨 소리가 들리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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