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무장하니 섬유도 성장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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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의 이시원(60.사진) 대표는 30년 동안 자수 생산에만 매달린 경영인이다. 사양 사업이 됐다며 하나 둘 섬유업계를 떠났지만 그는 꿈쩍하지도 않았다. 보란듯이 자수를 세계 경쟁력을 가진 산업으로 바꿔 놓았다.

이 대표가 만드는 제품은 여성용 속옷이나 테이블보.커튼 등에 들어가는 자수 장식품이다. 염색을 하거나 풀로 붙이는 게 아니라 화려한 꽃무늬 등을 옷감에 직접 뜨는 일이다. 디자인 기술이 접목돼야 한다. 비비안.비너스 등 국내 브랜드를 비롯, 일본 와코루.독일 트라이엄프 등 세계적인 속옷업체가 부천의 자수 제품을 쓰고 있다. 전통적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스위스.일본업체들과 어깨를 겨루고 있다. 한국 기업으론 유일하게 세계 5대 자수업체에 올랐다.

"차별화를 하면 승산이 있는데 왜 섬유가 사양산업입니까. 디자인.기술이 뒷받침된다면 오히려 안정적인 사업이예요." 8일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에서 열린 '제 19회 섬유의 날' 행사에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그는 이같이 섬유산업 경영론을 폈다.

이 대표는 "어느 시대건 옷 안 입고 커튼 안 달고 살았던 적은 없었다"며 "소득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색 다른 의류.장식을 찾기 마련이어서 섬유 산업에서 상당한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대표가 자수 사업에 나선 때는 1975년. 우리나라 섬유산업이 힘을 낼 무렵이다. 섬유업체에 다니다가 자수 장식만을 만드는 회사를 따로 차려 독립했다. 처음엔 외국 제품을 베껴 만들었으나 금세 바이어들의 눈총을 받았다. 1980년대 초반 이 대표는 독자 연구실을 만들어 회사 특유의 디자인을 고안했다. 현재 임직원(140여 명)의 10~15%가 연구인력이다. 디자인 품격이 올라가자 일본.미국 업체들이 알아서 찾아왔다.

이 대표는 "'한국인은 손재주가 좋고 감각이 뛰어나다'는 이미지가 점점 퍼지고 있다"며 "세계 자수 장식 시장을 선도할 날이 머지 않았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부천의 지난해 매출액은 215억원이다.

글=김필규 기자 <phil9@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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