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인의 '이것이 논술이다'] 논술 준비 첫걸음은 기출문제 확인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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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인 유웨이중앙교육 오케이로직논술 대표강사

논술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그것이 수능 시험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철학 시험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지 않을 뿐 아니라, 입시가 임박하기 전까지는 논술을 직접 대할 기회도 적다. 학부모도 논술 경험이 없기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전혀 감을 못 잡는다. 이렇게 만연한 무지가 불안을 낳고, 아무 데나 손을 벌리게 한다.

우선 이 무지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인터넷으로 아무 대학교나 입시자료실을 가면 논술 기출문제가 있다. 무작정 한 문제를 풀어 보라. 수영을 배우려면 일단 물에 뛰어들어야 하지 않던가. 학생과 부모가 같이 해보는 것도 좋다. 일단 이렇게 한 번만 해봐도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자신의 문제점을 알아도 바로 해법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논술 문제는 통상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하나는 물음이고, 다른 하나는 제시 자료다. 물음은 이것저것 조건과 함께 특정 문제에 대해, 또는 자료를 보고 문제를 찾아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라는 형태로 되어 있다. 한편 자료에는 동서고금의 고전, 시사 지문, 그림과 사진.도표 등이 나오며, 여기에 한자가 포함될 수 있다.

2006학년도 수시1학기 논술고사에서 수험생들이 답안을 작성하고 있다. [중앙포토]

수험생이 어려워하는 대목은 물음도 물음이거니와 제시 자료를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영어가 포함되건 아니건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또는 교사들마저) 어렵게 느낄 만한 몇 개의 예를 보겠다.

"자연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 해결을 강요하는 인류의 가장 큰 문제는 보편적으로 정의가 지배하는 시민 사회의 건설이다. (중략) 개인의 자유가 외적인 법률의 강한 힘과 결합된 사회, 즉 완전히 정당한 시민적 정치 체제가 인류를 위한 자연의 최고 과제임에 틀림없다."(2003학년도 성균관대 정시)

"그러나 만일 학문들이 이 같은 방식으로 객관적으로 확정 가능한 것만을 참이라고 간주한다면, 만일 정신적 세계의 모든 형태들, 즉 그때그때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모든 理想과 規範이 일시적 파도와 같이 형성되고 다시 소멸하는 것이고, 이것들은 과거에도 항상 그랬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따라서 이성은 不條理가 되고 善行은 災殃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역사가 가르칠 뿐이라면, 세계와 그 속에 사는 인간의 現存在는 진실로 의미가 있을까?"(2005학년도 서울대 수시2)

"君子有九思하니 視思明하며 聽思聰하며 色思溫하며 貌思恭하며 言思忠하며 事思敬하며 疑思問하며 忿思難하며 見得思義니라."(2006학년도 경희대 수시1)

문제에 이런 제시문이 하나씩 섞이게 되면 그야말로 난감하다. 기출문제를 직접 풀어본 (또는 풀어보다 실패한) 학생은 어느 정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바로 이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좋은 출발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따르고, 해법을 스스로 원하게 된다. 이제부터는, 물가에 끌려온 말이 아니라 물을 마시고 싶어 물가로 가고자 하는 말처럼, 공부를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시인 횔덜린의 말처럼 위험이 있는 곳엔 구원도 따라 자라는 법이다.

김재인 유웨이중앙교육 오케이로직논술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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