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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고 인간스러운 '환장'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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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학 시인의 세 번째 산문집 『환장』(랜덤하우스 발간)을 펴낸다.

환장, 이라고 쓰고 보니 환장이라는 말이 간질거려 사전을 펼쳐본다.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벗어나게 마음이 바뀌어 아주 달라짐'이라는 해설이 왠지 낯설다. 환장은 그냥 '환장하겠네'의 환장이 아닌가. '어느 봄날 젊은 놈은 그늘에서 장고만 치는데 여자는 뙤약볕에서 울면서 노는' 그런 샛노란 약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이윤학 시인의 '환장'은 그와 다르다. 아주 소박하고 따스하면서도 참스럽기 그지없다. 후끈한 봄날 실컷 걷고 난 뒤 벗어버린 양말 속에서 시큼하게 풍겨 나오는 발 고린내 같은, 좌석버스 안에서 저도 모르게 픽 뀌어버린 한 처녀의 슬픈 방귀냄새 같은, 잃어버린 운동화 한 짝을 찾으려고 개펄에 푹푹 빠지는 무릎 같은… 말하자면 너무나도 인간스러운 '환장'이다.

여전히 그는 느릿느릿 걷는다. 말도 아주 조금 더듬는다. 그러나 그에게는 감추어둔 뜰채가 있나 보다. 깨끗하게 알을 닦은 돋보기가 있나 보다. 묏자리에서 스물여덟 발자국을 셀 줄 아는 그, 그가 담고 그가 들여다본 세상에는 착한 사람들만 사나보다. 눈물 많은 사람들만 사나보다.

그래서인지 『환장』을 읽으면 마음이 매캐해진다. 잊고 살았던 송사리가 쉬고 가는 작은 개울, 그 연원이 내 속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눈이 맑아진다. 그리고 문득 공중전화를 걸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전화카드를 사주고 싶어진다. 그도 못한다면 주머니 탈탈 털어 잔돈이라도 손에 쥐어주고 싶어진다. 한참 동안 수화기를 들고 서 있는 외국인 노동자, 실컷 말하다가도 눈물이 핑 도는 얼굴이 되어버리는 그들의 그리움을 엿본 값으로 말미암아.

■ 저자 소개: 이윤학
1965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남.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동국대 국문과 졸업. 시집 『먼지의 집』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 『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 『그림자를 마신다』, 산문집 『거울을 둘러싼 슬픔』 『푸른 자전거』,장편동화 『별』, 성장소설 『졸망제비꽃』이 있음. 제22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조인스닷컴, 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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