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을 떨어뜨려 대지를 덮는 가을의 겸허함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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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스스스, 숲에서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파도소리 같다. 가을이 깊었음이다. 책을 보다 말고 어두워져 가는 창밖을 바라본다.
가을은 언제나 손님처럼 불현듯 찾아온다. 대야에 손을 담그며 물이 차갑다고 느낄 때, 또 문 앞에 가랑잎이 쌓인 것을 발견하는 어느 날 아침, 성큼 다가서는 것이다.
그때마다 가을이구나, 또한 해가 가는구나 하고 뇌까린다. 언젠가부터 가을은 내게 시간을 의식하게 해서 가을을 실감하면 마음이 스산해진다. 시간 앞에서 초조감을 느낄 정도로 나는 열심히 살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을 느끼게 하는 가을이 두렵지만 그래서 또 가을을 사랑한다. 가을은 우리 자신을 뒤돌아보게 한다. 가을에 우리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다. 전방을 순찰하던 젊은 장교도 가을은 조국을 생각하기엔 너무 아름답다고 낙엽을 밟으며 혼자 말한다.
가을의 아름다움은, 위대함은 자기 비우기에 있다. 잎을 다 내어주며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린다.
이것은 겸허한 성실이다. 봄부터 가지의 싹을 키우느라 헐벗었을 어머니, 대지를 위해 이젠 제가 헐벗는 것이다. 제 몸으로 대지를 덮는다. 사랑을 받았고 사람을 바치는 것이다.
나무의 자기 비우기는 아낌없이 생명을 태운 그 결실이기도 하다.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불어도 봄이면 찬연히 꽃들을 피워 올리고 여름이면 열기 속에 무성히 가지를 뻗고 우리에게 그늘을 만들어 준다.
그리하여 스스로 가을걷이를 하는 것이다. 할 일을 다했으므로 뿌리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본래의 참모습으로. 이것은 곧 인생의 길이기도 하다.
몇 년 전 가을이었던가. 벼가 누렇게 익은 들판을 걸어가는데 곳곳에서 마을사람들이 추수를 하고 있었다. 제비 떼가 하늘을 덮을 만큼 많았고 농부의 가족들은 이따금 제비를 쫓는 시늉을 하며 밭에 나락을 쌓아 올렸다. 들판 너머 동산의 소나무 숲으로는 홍시 같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일을 끝낸 농부의 가족들은 탈탈거리는 경운기 위에 앉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눈물을 쏟았던 일이 지금도 아프게 기억된다. 내겐 살아온 만큼도 추수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추수를 하기 위해 혼자 끝도 없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자 삶이 고통스럽게 여겨졌다.
우리의 삶은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일 것이다. 그것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죽음일수도 있지만 삶도 죽음도 없는 자연 그 자체의 생을 말하기도 한다. 애증도 없고 욕망도 없이, 죄 짓지도 않고 욕되지도 않게 순수한 생명으로만 서있는 나무들. 순리에 자신을 맡기고 소명을 다하는 나무. 이러한 자연의 모습에서 우리는 삶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공예는 작가의 생활이 그대로 배어 나오는 도라고 말했던 어느 염색작가는 자연 속에 살며 자기 아집과 독선을 치료받았다면서 『사람들이 모두 병자다. 이런 병은 자연 밖에 고칠 수가 없다』고 했다. 아파트 투기는 말할 것도 없고 올림픽복권도 순식간에 나간다는 물질주의의 한탕시대, 거친 폭력시대의 병이어서.
우리 민족은 자연을 사랑해서 본성은 착하다. 경주 남산의 불상들을 보면 자연의 부분인양 바위에 부조되어 있는데, 불상의 표정이 어찌나 순박한지 『술 한잔 마시고 가소』하고 말하는 것 같다. 이런 불상들은 당시 자연을 숭배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신라인의 모습이 그대로 나온 것.
이런 얼굴들을 선조는 유산으로 물려주었건만 지금 우리는 가장 자연에 역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
자연에,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껍질을 벗어야 한다. 물욕과 이기의 껍질. 각자 자신의 일을 통해 순간 순간 충실히 살면서 자기 비우기 연습을.
민들레는 씨를 늦게 퍼뜨리는 법이 없고, 땅은 그 씨앗을 품었다가 봄에 싹을 트게 한다. 순간이 영원으로 이어진다. 나도 주어진 생명을 의연하게 꽃피우고, 메마른 땅의 나무들처럼 가을걷이를 바쳐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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