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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성 화백 희귀작까지, 40년 모은 미술품 456점 내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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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큰손 컬렉터의 ‘선물 보따리’에는 그가 40년 가까이 모은 미술품 456점이 들어 있었다. 이우환(79)의 ‘바람과 함께’(1990)와 ‘조응’(2004), 이인성(1912∼50)의 ‘연못’(1933) 등의 명작도 포함됐다. 대구미술관에 미술품을 대거 기증한 지역 사업가 김인한(66) 유성건설 회장은 세간에 생소한 인물이다. 대구 화단에는 소리소문 없이 미술가들을 후원하는 ‘키다리 아저씨’로 알려져 있다. “작품 기증이 내 개인의 명예를 높이는 일이 아니길 바란다”며 인터뷰를 고사하던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그는 1990년 유성건설을 세웠다.

김인한 회장

 - 미술품을 모으게 된 계기는.

 “1970년대 후반부터다. 건설업은 정서적으로 거친 직업이다. 사업상 많은 이들을 만나야 했지만 술집에 가거나 접대를 하지 않고, 그들과 화랑·미술관을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기를 좋아했다. 미술가들과 만나는 것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 오랜 기간 모은 작품의 기증을 결심하기가 쉽지않았을 텐데.

 “운좋게 기회가 있어 미술품을 소장할 수 있었지만, 그 가치는 내 개인의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미술관에 기증할 마음을 먹고 모았다. 작품을 수집하다 보니 미술품의 문화적 의미가 와 닿았고, 그것은 공공의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신생 대구미술관이 활발한 전시를 통해 인기있는 미술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점도 계기가 됐다. 여기 기증하면 대구 미술문화에 도움이 되면서, 많은 이들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구미술관 김선희 관장은 “기증품을 목록화하고 있는데, 이우환의 회화 두 점만 해도 10억∼20억원에 이를 것”이라며 “대구미술관은 ‘이인성 미술상’을 주관하고 있음에도 이인성의 작품이 한 점도 없었는데, 이번에 그 마음의 짐 또한 덜게 됐다”고 말했다.

 - 기증할 작품은 어떻게 골랐나.

 “소장품 1000여 점 중 한국 근현대 작품이 700여 점 정도 있다. 대구미술관에 기증하는 작품은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한 미술가들의 것을 위주로 골랐다. 대구는 해방 전후로 이인성·이쾌대 등 우리 미술의 주요 작가들이 활동한 곳이다. 70년대 한국 현대미술 운동의 중심적 역할도 했다. 대구 미술의 정신을 느낄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선정의 기준이었다.”

 - 당신에게 미술이란.

 “우리의 자존심을 부추겨 세우는 것. 훌륭한 작품은 예술가에 의해 탄생하지만 그것을 사회적으로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개인과 사회의 몫이다. 컬렉터는 그 소통을 만들 수 있다.”

◆기증이 부른 기증=2011년 개관한 대구미술관의 소장품은 308점(지난달 기준)이다. 국립현대미술관(7000여 점)의 24분의 1이다. 대구미술관에 올 초 기증이 이어졌다. 김 회장의 456점 외에 재일교포 사업가 하정웅(77)씨가 기증한 대구 미술가 곽인식(1919∼88)과 재일교포 손아유(1949∼2002)의 회화·판화 46점, 전시 중인 독일 미술가 오트마 회얼(65)의 조각 12점 등 총 514점이다.

 최근 ‘하정웅 컬렉션 특선전: 위대한 유산’ 개막차 미술관을 방문한 하씨는 “개관 무렵 대구미술관 수장고를 본 적이 있다. 당시 그 어떤 시·도립미술관보다 넓은 수장고를 갖고 있었는데도 작품이 단 5점만 있어 안타까웠다. 그때의 인상이 이번 기증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공립미술관의 대표적 ‘기부천사’다. 93년 이래 광주·부산 등의 공립미술관을 중심으로 수천억원 상당의 미술품과 자료 1만여 점을 기증했다. 서울·광주·부산·포항 등 전국 8개 시·도립미술관에서는 이를 기념해 2013년부터 그의 기증작품 순회전을 열고 있다. 대구미술관의 ‘위대한 유산’(5월 10일까지) 전은 그 종착점이다.

 미술관 야외 공원에 전시 중인 높이 1.6m 토끼 조각 12점 모두를 기증키로 한 오트마 회얼은 “내 작품은 공공장소에 놓여 있을 때 가치를 더하기 때문에 기증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선희 관장은 “대규모 기증 사례가 드문 일이라 기증자 예우에 대한 내규를 손질할 예정이다. 기증자 이름을 딴 전시실이나 벽·길 등 외국 사례와 지역 미술인 견해를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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