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한달] 파키스탄 대지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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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병과 굶주림, 그리고 추위=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서쪽으로 100여㎞ 떨어진 알라이 계곡. 지난달 지진 때 수천 명이 사망하고 19만 주민의 가옥이 대부분 파괴된 곳이다. 파키스탄 당국은 지난달 말 해발 2000m 이상인 이곳 주민 8만 명을 저지대로 이주시킨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임시 수용소에 몸을 의탁한 이들이 겨울이 되면 동사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반발했다. 모하메드 사(42)는 3일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에 "부모의 묘가 있고 땅도 있어 이주할 수 없다. 차라리 산속에 굴을 파고 겨울을 나겠다"고 말했다. 주민들 반발에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 루이스 패터슨 미국 피난문제협의회 조정관은 "이곳엔 지금 폐렴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으나 치료도 못 받고 있다. 겨울이 오면 저체온증으로 수만 명이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또 지진으로 크게 다친 7만여 명 중 제대로 치료받고 있는 환자는 10%도 안 된다고 밝혔다. 파상풍과 출혈열도 이재민을 괴롭히고 있다. 사차 부츠마 WHO 공보관은 "지난 한 달 동안 111명이 파상풍에 감염됐으며 이 중 22명이 숨졌다"고 말했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현재 구호가 필요한 이재민은 230만 명. 이 가운데 현재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100만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고지대와 오지에 살고 있어 헬기로도 접근이 안 된다.

WFP는 앞으로 2주 내 이들에게 식량이 공급되지 않으면 5만 명 이상이 굶어 죽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1일 이번 지진으로 모두 7만3276명이 사망했고 6만9000여 명이 중상했으며 이재민 300여만 명이 발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 고갈된 구호자금=구호자금은 턱없이 부족하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지진 발생 직후 미국 등 30여 개국은 5억8000여만 달러의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실제로 지원된 자금은 약속액의 20% 정도인 1억1000만 달러에 불과하다.

OCHA는 앞으로 이재민 월동을 위해 최소한 1억5000만 달러가 필요한데 자금은 바닥난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파키스탄 정부는 주택 재건에 필요한 20억 루피(약 3300만 달러)의 신규 예산을 책정했다. 당초 계획했던 미국의 F16 전투기 구매도 연기했다. 이 돈을 피해 복구에 쓰기 위해서다.

영국 구호단체인 옥스팜은 "부자 나라들이 구호금을 내지 않는다. 특히 프랑스와 스페인은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이런 가운데 여진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지진이 발생했던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지역에 6일 오전(현지시간) 또다시 리히터 규모 6.0의 강진이 발생했다. 피해 상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구호단체 월드비전에 따르면 고지대 주민들은 지금도 지진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카슈미르에서만 1190차례의 크고 작은 여진이 발생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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