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조<동국대교수, 인도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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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모교에서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학창때의 체취가 배인 교정을 선생의 신분으로 음미한다는 것은 퍽이나 쓱스러운 일이다
나는 학교의 어디에서나 나의 분신을 발견한다 온몸을 호기심으로 무장한 젊은이도 있고 달관한듯한 분위기의 노교수들도 있다 나는 그들과 섞이면서 지울수 없는 삶의 단면을 발견한다
20년전 나는 추위에 수험생으로서 모교문을 들어섰다
그때 백발이 성성한 한교수분이 나에게 물었다 무엇때문에 우리학교 인도 철학과를 왔는가 』도대체 대답할 길이 없었다
솔직이 말한다면 「호기심에서」라고 대답하고싶었지만 이실직고할 수 없었다
나는 요즈음도 입시때마다 수험생들에게 짖궂게 같은 질문을 한다. 나는 답변을 나름대로 가늠하면서 혼자 고소한다
입학후 나는 대학강의의 어마어마한 제목에 질렸다 존재니 니히트(Nlch-t)니 하는 괴상한 말들이 사정없이 뇌리 때리고 1백분의 강의시간동안 동서고금이 타임머신처럼 흘려간다.
그러나 열등감을 잊는 비법을 곧 터득하게 되었다 같은 표현을 두 번만 들으면「저 교수는 10년째 똑같은 노트를 쓰리라」고 자위했고 너무나 완벽하고 해박한 지식을 가진 교수를 만나면 끝없는 질투를 느꼈다 사람이 좀 빈데도 있고 모자라기도 해야지...
나는 이때 처음 불교를 공부했다 불교라는 이미지가 다분히 그로태스크하게 느껴지던 때였다 해를 더해갈수록 그 가르침에 공감하고 몰입하는 자신을 깨닫게 되었다 불교에는 진지한 삶의 자세가 있었고 우주를 관조하는 예지가 있었다
그때 비로소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오늘도 속절없이 이 남산기슭을 오르내리는 후배들을 보며 보이지않는 인연의 그물이 어떻게 매듭지어질까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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