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 풍선을 붙였다, 엘리베이터 속 침묵이 깨졌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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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호 06면

1 엘리베이터에서 낯선 사람과 인사하기는 아직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서울 개포동 SH빌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이달 초 시범 부착한 인사말 풍선. 주민들이 처음에는 어색해하다 가볍게 인사하기 시작했다.
2 자주 누르는 1층 버튼에 부착한 ‘안녕하세요 - 이웃 간 한마디’ 말풍선. [강영호 객원 사진작가, 캐릭터 개발=공공소통연구소]

서울 개포동 SH빌 아파트 단지에는 감나무가 몇 그루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 이 아파트에서는 감나무를 둘러싸고 주민 간에 다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부 주민이 감을 따 가는 것을 보고 다른 주민이 “따지 마라”고 하자 “당신 것도 아니면서 왜 막느냐”며 험한 욕설이 오갔다고 합니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주민 한 분은 안타까웠다고 했습니다. “평소에 서로 인사를 하고 지냈다면 가볍게 넘어갈 수 있었던 건데 모르는 사이니 싸움까지 한 거 아니겠느냐”는 것이지요.

[작은 외침 LOUD] ⑦ 이웃과 소통하는 아파트 만들기

‘감나무 다툼’은 아파트 주민 간의 소통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아파트는 우리의 대표적인 주거 공간입니다.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이지만 이웃 간 교류가 거의 없는 삭막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앞집에 사는 이웃의 얼굴 정도나 알까, 위아래 층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러다 보니 층간 소음 문제가 심각한 다툼으로 이어지고 단지 내 감나무에서 감 몇 개 따는 걸로 싸움이 나기도 합니다.

작은 외침 LOUD는 이번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외칩니다. 서로 인사하며 지내자고요. 엘리베이터를 아파트 공동체의 정(情)을 회복시키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통 명절 설(18~20일)도 눈앞입니다. 이번 설에는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면 먼저 인사하시죠.

엘리베이터 문에 부착한 목례하는 모습의 말풍선. ‘뭐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문이 열리면 ‘인사 나누시죠’라는 ‘답’이 보인다. [사진=이영탁 연구원]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는 엘리베이터의 미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가볍고 편하게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인사말 풍선’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감나무 사건이 있었던 SH빌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 이달 초 붙였습니다. 먼저 엘리베이터의 특성상 짧은 시간 내 활용할 수 있는 간단한 인사말 10가지를 정했습니다.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지내시죠’ ‘좋아 보여요’ ‘편히 쉬세요’ ‘힘내세요’ ‘좋은 하루’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 ‘안녕하세요’입니다. 이 인사말을 말풍선 안에 담았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에는 목례하는 모습을 의인화한 커다란 말풍선도 함께 붙였습니다. ‘이게 뭐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10개의 말풍선이 가볍게 인사할 때의 각도(15~30도)에서 보입니다. 자주 누르는 1층 버튼 옆에는 ‘안녕하세요 이웃 간 한마디’라는 문구를 붙였습니다. 고개를 올려 자주 보게 되는 층수 표시등에는 ‘안녕하세요 인사말에 이웃 간 이해는 올라갑니다’ ‘안녕하세요 인사말에 이웃 간 오해는 내려갑니다’는 문구도 부착했습니다.

이후 두 시간 정도 주민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반응은 유쾌했습니다. 주민들은 처음에는 다소 어색해했지만 차츰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인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티커 부착을 막 마쳤을 때 탄 40대 남성은 “아니 이런 걸 붙였으면 지금 당장 인사해야지 않겠어” 하면서 “좋은 하루 되세요” 하고 내렸습니다. 아파트 주민 송현숙(67)씨는 “요즘엔 사람들 마음이 다 빙하기야. 엘리베이터 안에서 멀뚱멀뚱 어색할 때가 많아. 이런 게 있으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어져 인사를 더 하게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주민 이모(28)씨는 “가구 위치만 조금 바꿔도 집안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이런 인사 문구가 있으면 아무래도 인사를 더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주민 권오진(67)씨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각박한 세상에 엘리베이터 인사는 대찬성”이라고 했습니다.

인사말 풍선을 붙이던 그날, 아파트 주민의 반응은 좋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인사하기’가 자리 잡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사실 엘리베이터에서 낯선 사람과 마주칠 때 인사하는 게 어색하지요. 그래서 ‘인사하기’ 캠페인을 벌이는 지방자치단체도 있습니다. 서울 송파구나 경기도 수원시 같은 곳입니다. 수원시는 지난해부터 엘리베이터에 초점을 맞춰 ‘내가 먼저 인사하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관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같은 스티커를 부착하고 반상회에서 ‘인사하기’를 주제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자동차세 고지서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가 먼저 인사해요’라는 문구를 넣기도 했습니다. 수원시는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하지만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닌 듯합니다. 수원시 자치행정과 박신일 주무관은 “초기엔 반응이 뜨거웠는데 요즘엔 다소 가라앉은 편”이라며 “아무래도 낯선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에 인색한 우리의 정서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거리를 걷다 눈이 마주치거나, 버스정류소나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을 보게 되면 ‘하이’ 하면서 가볍게 인사하는 걸 쉽게 볼 수 있지요.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서구와 우리의 인사 문화 차이를 이화여대 사회학과 함인희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서구에서는 낯선 사람과 함께 살아야 했던 역사가 꽤 됩니다. 타인과 더불어 잘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압니다. 특히 공공 영역에서요. 대표적인 방법이 인사지요. 가정과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킵니다. 우리 사회는 다릅니다. 예전 마을 공동체 시절엔 누가 누구 집 자식인지 잘 알고 지냈습니다. 그 속에선 인사 잘하고 예의도 잘 지키지요. 하지만 요즘엔 모르는 사람과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파트는 특히 그렇습니다. 모르는 사람과 한 공간에서 지내게 됐는데 그들과 잘 지내는 훈련은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에게 다정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겐 무관심하고 때론 무례합니다.”

함 교수는 무엇보다 가정에서의 인사 교육을 강조합니다. 부모의 솔선수범도요. 그게 아이들에게 전해진다는 것이지요. 인사에 대한 응대도 중요합니다. 먼저 인사했는데 안 받아주거나 대충 인사를 받으면 민망해집니다. 그런 일이 한두 번 쌓이면 인사를 안 하게 되지요. 아파트 이웃 주민과의 정을 나누는 것,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인사하기,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내가 먼저 가벼운 목례, 간단한 인사 한마디를 건네다 보면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으면 엘리베이터 안에 부착된 인사말 풍선 캐릭터를 볼 수 있습니다. [동영상=장종원]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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