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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요리하기 까다롭지만 내 이야기 같은 음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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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호 27면

1921년의 라흐마니노프(1873~1943). 러시아의 대표적인 피아니스트, 작곡가로 피아노 곡에 걸작이 많다. [위키피디아]

사실은 이 곡을 정말 좋아했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겨울, 한 음악캠프에서 같은 방을 썼던 대학생 언니가 “너는 무슨 곡을 제일 좋아해?”하고 질문했을 때 주저 없이 이 곡을 댄 게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러자 언니가 “나는 협주곡 3번이 더 좋아”라고 했고, 그 곡을 아직 몰랐던 나는 “이 곡보다 더 좋은 음악도 있을 수가 있어요?” 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스무 살을 넘겨 스무 곡이 넘는 협주곡을 배웠어도 이 곡은 여전히 최고였다. 그 겨울엔 알지도 못했던 협주곡 3번을 배웠을 때까지도. 우리 예술종합학교 피아노과의 3분의 1이나 되는 학생들도 이 곡만큼은 자다 일어나서도 칠 정도였다. 루빈스타인·아슈케나지·리히터·라흐마니노프 본인의 연주까지 좋은 음반도 많았다. 아무 사적인 감정 없이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피아니스트라는 점도 얼마간은 기분 좋게 느껴졌다. 어떤 설문 조사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협주곡 1위를 절대로 놓치지 않는, 그만큼 모두가 언제라도 듣고 싶어 하는 곡. 그리하여 피아니스트라면 특별한 신념이 있어 거부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연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곡,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결국 나도 2008년 한 오케스트라의 제의를 받고 그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악보를 처음 편 지 얼마 되지 않아 그토록 지고지순하게 오랫동안 흠모해 온 곡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가장 거슬렸던 점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그대로 베껴놓은 것 같은 구조였다. 교향곡 1번의 실패로 와신상담을 한 결과라고 하기엔 좀 비겁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고 보니 특유의 최루성 선율과 화성은 ‘제발 날 좀 사랑해줘’하고 구걸하는 것 같았다. 마침 독일로 유학간 지 얼마 안 됐고 슈베르트와 슈만에 푹 빠져 있던 때라 채식만 하다가 갑자기 고기를 먹은 듯 속이 더부룩해졌다.

게다가 세기의 피아니스트 작품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기저기 부자연스러운 흐름투성이였다. 협주곡 3번은 음표가 3만 개나 돼도 익숙해지면 손이 알아서 다음 음을 짚게 될 정도로 움직임이 자연스러운데 이 곡은 아무리 해도 영 손에 붙지 않았다. 그 많은 사람이 어쩜 다들 그렇게 잘 칠까 의아할 정도로. 급기야 맨 마지막 코다에서 협주곡 3번이나 차이콥스키 1번처럼 오케스트라와 함께 멜로디를 연주하는 대신 오케스트라의 멜로디를 반주하는 모양새마저 짜증이 났다. 일설에 의하면 호로비츠도 이 점이 싫어 이 곡을 끝끝내 안 쳤다는데(그 얘기를 들은 라흐마니노프가 당신이 원한다면 멜로디를 함께 쳐도 상관없다 했으나 그건 싫다고 했다던).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의 음반.

진짜 문제는 오케스트라와의 조화였다. 박자가 수없이 바뀌는 데다 악기의 구성이 워낙 두텁다 보니 피아니스트보다는 지휘자의 권한이 클 수밖에 없는 곡이었다. 혼자 열심히 구상해 간 곡의 구성은 리허설 한 번에 산산조각이 났고 오케스트라에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의 연주를 끝으로 다짐했다. 웬만하면 피해가리라. 그 후로 이 곡을 연주하자는 제의가 올 때마다 별 핑계를 다 댔다. 협주곡 3번이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은 어떠냐, 러시아 협주곡이 필요하다면 차이콥스키나 프로코피예프는 어떠냐, 이 곡 말고는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등등. 몇 년 동안 요리조리 용케 피했다. 그러던 중 재작년에 받은 두 개의 초청, 모두 놓칠 수 없는 음악회였다. 다른 곡은 안 되고 무조건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운명은 괜히 운명이 아니었다.

다시 꺼내 든 악보는 역시나 불편했다. 기술적인 것보다는 시도 때도 없이 울컥하는 그 내용이 참으로 요리하기 까다로운 탓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보니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조금 차용했다고는 해도 훨씬 완성된 형태의 구조에 누가 뭐래도 세기의 선율과 화성이 아닌가. 마음을 다스리려고 한밤중에 혼자 느린 부분을 연습하며 또 열이 올랐다. 대체 몇 번을 울컥하는 거야!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나도 모르게 내 심장이 음악에 따라 울컥하는 거였다. 문득 기억이 났다. 예전에 한 독일 피아니스트 친구가 ‘싸구려 감상주의 음악’이라며 라흐마니노프 혐오증을 자랑하듯 말하기에 집에 돌아와 혼자 이 곡을 들으며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면 이런 음악을 안 좋아할 순 있어도 들으면서 심장은 벌렁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

딱 그 느낌이었다. 몸이 머리와 마음하곤 상관없이 반응하는 기분. 심장은 열려버린 듯, 머리는 비어버린 듯, 언제부턴가 눈물도 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내 허락은 전혀 필요 없는 듯 어느새 나에게로 성큼 다가와 있는 음악. 그저 내 이야기 같은 음악. 어떤 소설이 분명 남 얘기인데도 마치 내 얘기인 것만 같은 느낌. 아련한 유년의 기억, 애써 상처를 극복한 이야기, 애잔한 사랑의 추억, 무엇이 되었든 내 이야기 같은 음악. 가만 보니 이건 그런 음악이었다.

물론 한번 내 마음이 열렸다고 해서 단번에 예전처럼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했던 그 곡이 되돌아온 건 아니었다. 그래도 얼마 후엔 연습하다 말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을 견디다 못해 울어버렸고, 몇 달 후엔 무슨 곡을 연주하고 싶냐고 물어온 오케스트라에 이 악보를 내밀었다. 2년이 지난 지금 이번 주에만 이 곡을 네 번 연주한다. 연주하다 보면 내 마음에도 없었던 어딘가로 자꾸 나를 데려가는 이 음악, 이번에는 어디로 나를 데려갈까.

손열음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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