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무산된 교원평가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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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교육부총리(오른쪽)와 교원단체학부모 단체 대표들이 4일 교육부에서 교원평가제 시범 실시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협상은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결렬됐다. [연합뉴스]

교육부 시범안도 두루뭉수리
평가 나쁜 교사 재교육이나 퇴출

교육인적자원부는 4일 교원노조 등과의 협상이 결렬되자 즉시 교원평가 시범학교(48곳)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8일부터 시범사업을 가동하기 위해서다. 시범학교당 2000만원씩 지원하는 계획도 세워뒀다. 전교조는 즉각 시.도 지부를 총동원해 시범학교 선정 저지 투쟁에 들어가기로 했다. 한국교총도 교육부총리 퇴진 운동과 함께 12일 서울역 앞 광장에서 교원 총궐기 대회를 개최키로 했다. 교원평가 시범사업이 진행되려면 일선학교가 시범학교 신청을 하고, 두 개의 평가안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 결정이 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격한 갈등이 예상된다.

◆ 전교조.한국교총 왜 반대하나=3일 밤만 해도 교육부.전교조.한국교총.학부모 단체의 협상 실무자들은 교원평가안에 대한 합의를 도출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4일 새벽이 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협상에 참여한 한 인사는 "전교조 측 실무자가 본부와 의견조율을 한 다음 상황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전교조가 그동안 긍정적 의견을 보였던 두 가지 평가 방안 중 하나에 동의할 수 없다고 태도를 바꾼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전교조 이수일 위원장 등 집행부의 한계이자 딜레마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원평가를 안 받자니 가뜩이나 궁지에 몰려 있는 전교조가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게 될 것 같고, 시행에 동의하면 현행 집행부가 강경파의 공격을 받게 되는 곤란한 상황이라는 것.

결국 전교조는 4개월여 전 협의회에 들어올 때 내세웠던 '표준 수업시간 수 법제화' 등 전제조건을 내세워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한국교총도 김진표 부총리의 '합의 파기'를 이유로 총궐기 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김 부총리는 "협의회의 합의안을 마련할 때까지 교원평가 시범학교를 선정하지 않는다"고 약속했었다. 실제로 이 약속 때문에 지난달 학부모 단체가 탈퇴를 선언했을 때 협의회 가동이 중단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협상에서 전교조가 합의를 결렬시켰지만 교육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시범사업을 강행하기로 한 것이다.

◆ 평가안 뭐가 문제=갈등은 시범학교 선정 때부터 발생할 소지가 있다. 전교조 한만중 대변인은 "합의를 무시한 교육부와 대립은 불가피하다"며 "시범학교 선정 작업에 참여할 시.도 교육청에서 항의 농성.집회 등을 열어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말했다.

시범사업에 참여할 학교의 교장은 교사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받아 시.도 교육청에 신청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범사업 강행에 반대하는 전교조.한국교총 소속 교사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교사도 굳이 평가를 받겠다고 나서기 힘든 상황이다.

시범사업 참여를 결정하더라도 또 하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교육부가 제시한 두 개의 안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이다. 교원평가를 할 때 먼저 평가위원회 등 기구를 만들어야 하는데 교육부 입장이 담겨 있는 1안은 평가위원회에 교장 또는 교감 중 한 명을 넣자는 것이다. 참교육학부모회 등 학부모 단체가 희망하는 2안은 교장.교감을 빼도록 돼 있다. 어떻게 구성할지 결정하기 쉽지 않다. 2안은 또 평가 결과를 학교장에게 통보하지 않게 돼 있다. 교장.교감과 평교사가 선호하는 평가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최종적으로 평가안이 결정되더라도 학생이나 학부모 등 교육 수요자의 입장에서 보면 평가의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학부모는 자녀의 학교 생활 전반이나 교장.교감의 직무 수행에 대한 만족도 설문조사만 응할 수 있다. 학교 측이 그 결과를 반드시 반영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학생이 작성하는 교과목별 만족도 조사 역시 해당 교사의 수업 개선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뿐 반드시 개선해야 할 조건이 따라붙지 않는다. 교사 간 다면평가 결과도 교사의 승진이나 봉급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한국교육평가학회 회장 송인섭(숙명여대) 교수는 "학부모의 평가 부분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학부모가 개별 수업에 대해 평가 지표를 가지고 점수화하는 평가를 하고 그 결과를 수업 개선에 활용토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홍준 기자<kanghj@joongang.co.kr>

교장.교감.교사 서로 vs 교사끼리만 평가
교육부 복수안 차이점은

교육인적자원부가 마련한 교원평가 시범운영 방안 중 제1안과 제2안의 가장 큰 차이는 우선 다면평가의 방법이다. 제1안은 교장.교감.교사 3자가 직위 구분없이 서로를 평가한다. 반면 제2안은 교장과 교감은 교사를 평가하지 않고, 교사도 교장.교감을 평가하지 않는 대신 동료교사끼리만 평가하게 된다. 동료교사 평가는 초등학교는 같은 학년 교사끼리, 중.고교는 같은 교과 교사끼리 교과활동.수업준비.수업계획 등을 평가하게 된다.

평가 결과를 해당 교사에게만 통보할지(제2안)와 학교장에게도 통보할 지(제1안)도 차이가 난다. 또 학교마다 설치되는 교원평가위원회에 교장.교감 중 1명을 의무적으로 포함하는 것(제1안)과 평가위원회가 자율 결정하는 것(제2안)을 복수안으로 제시해 시범학교가 선택하도록 했다.

이 밖에 나머지 평가방법은 두 안이 같다. 초등학생의 경우 담임교사에 대해, 중.고생의 경우 교과 교사에 대해 수업만족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게 된다. 학부모는 자녀의 학교생활 만족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평가과정에 참여한다. 모든 학부모가 설문조사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고 학교 규모에 따라 참여비율을 자율 결정케 된다. 교장이나 교감은 학교 운영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 평가 주기는 연 1회다.

김남중 기자<njkim@joongang.co.kr>

평가 나쁜 교사 재교육이나 퇴출
미국·일본선

#사례 1

교원평가 결과, 개선 등급(3등급)을 받을 경우 1년간 재교육을 받는다. 이후 모범(1등급)이나 숙련(2등급) 등급을 받지 못할 경우 교단을 떠나야 한다. 이보다 아래인 자질부족 등급(4등급)을 받을 경우엔 아예 사직권고를 받는다.

#사례 2

전문지식.학생 지도 능력.학급 경영 능력 등이 부족하다고 평가된 교사는 최장 2년간 연수를 받을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지도력 부족 교사로 판정된다면, 역시 떠나야 한다.

언뜻 가혹해 보이는 이 제도는 각각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와 도쿄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원 평가 방식이다. 페어팩스 카운티에선 재교육 받은 교사 중 불과 65%만 임용된다고 한다. 이후 평가에서 1 ~ 2등급을 받기 전까진 임금도 동결될 정도로 엄격하다. 신참 교사는 아예 3년간 '견습' 신분이어서 매년 평가를 받고 1년 단위로 계약한다. 미국의 다른 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엄격한 평가를 토대로 자질 부족으로 판정된 교사에게는 재교육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래도 개선되지 않을 경우 교직을 떠나도록 하는 것.

공교육 붕괴 위기를 겪고 있는 일본이 마련한 해법도 유사하다. 2000년 도쿄를 시작으로 교원평가제 채택 지역이 늘고 있다. 실제 2003년에만 149명이 교사직을 그만뒀다고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학교평가를 하는 곳도 있다. 영국의 교육기준청(OFSTED)이 9월 86개 학교를 평가, 7개교에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이 중 6개교엔 개선 경고가 나갔고 1개교는 특별조치 대상으로 분류했다. 이전엔 조사하겠다는 사실을 10주 전에 알렸는데 이젠 이틀 전에 알린다. 그래야 학교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개선이 어려운 학교는 아예 전 교직원을 바꾸는 일도 있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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