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역찾기 어려운 미완성의 그릇들" 버마참사로 간 경제관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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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번 미얀마참사가 더욱 비통스러운 것은 무척 귀중한 재목들을 한거번에 많이 잃었다는 점이다. 경제쪽이 특히 심해 커다란 구멍이 뚫린 느낌이다.
그들 하나하나가 지난 20여년동안의 경제성장사에 뚜렷한 족을 남겼고 그동안의 여러 시행착오속에서 쌓은 지식과 경륜은이 나라의 귀중한 자산이었다.
그지식과 경륜이 가장 필요한 이때 너무나 어이없게 참변을 당한 것이다. 개인적 불행임은 물론, 나라의 큰 손실이다.
한국과같은 황량한 풍토에서 그들이 그만큼 크기에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간난과 또 운이 있었을까.
삐끗하면 천길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고비를 몇 번씩이나 넘겼다. 그 치열한 경쟁, 그많은 유혹과함정, 간헐적으로 밀려드는 정화의 태풍….
항상 긴장하고 경계해야하고 또 누구와도 척을 져서도 안된다.
합리적원칙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정사회만도 아닌 미묘한 풍토에서 그정도까지 크기에는 정말 각고의 노력과 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같은 직업관료라도 자기맡은 일을 배운대로, 원론대로만 하면되는 프랑스와 일본등 보다도 훨씬 험난한 길인 것이다.
그런점에서 더욱 대체불가능한 「노하우」라할 수 있다.
이번 참변을 당한 사람들이 각기 입장과 생각들은 달랐지만 어려운 시대를 열심히 살았다는 점에선 공통된다.
경제관료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서석준부총리, 초년병시절부터 최선을 다해 위로위로직진했다. 사무관시절에는 발아기의 석유화학공업을 맞아 교과서를 뒤져가며 합작계약서를 심사했고 물가보장시절엔 쌀·연탄·시멘트파동과 백공전을 벌였다. 기획국장땐 1천달러 소득·백억달러수출의 책사진을 만들었으며 1급땐 중화학기획부단장으로서 초창기 중화학공업을 일으키는데 깊이 관여했다.
박대통령을 정점으로 장기영·김학열·남덕석·김용환씨등으로 이어지는 경제주역들 밑에서 항상 핵심자리의 핵심적 역할을했다.
신언서판을 다 갖춘 뛰어난 능력과 헌신적 자세때문에 항상 필요한 존재였고, 그래서 고김학렬씨에 이어 사무관에서 차례로 올라 부총리까지 된 2번째인물이다.
고김부총리가 독특한 개성의 사람임에 비해 서부총리는 문무겸전의 능사형이었다.
곤경에 있는 사람들에겐 적극적인 도움을 주었고 살얼음판에서도「리스크」를 져 아슬아슬한 고비가 몇번 있기도했다.
「최연소」의 식담을 덜기위해 무척 노력했다. 부총리가 되기전 1년동안의 야인생활에서 원숙미를 더해 바야흐로 큰뜻을 펴려는참에 변을 당했다. 부총리가 되고나서 『너무나 신중하다』는 세평에 대해『젊은 부총리가 혹시 엉뚱한 일을 또 벌이지 않을지 우려하는것을 없애주는 것이 지금 내가할일』이라면서도 너무나 교과서적 이상론에 경사되어있는 현정책여건을 바꾸기위해 착착 분위기 조성을 하던 참이었다. 오랜경험을 통해 큰 배가 충격없이 선회하려면 얼마나 신중해야 한다는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실에 정통하고 신중하는 그런 마음가짐이 쟁쟁한 동료는 물론, 선배까지도 제치고 그야말로 자수성가하여 최연소 부총리까지된 원동력이 됐을것이다.
이번에 같이 변을 당한 김재익청와대경제수석이나 이기욱재무차관과는 대학동기동창으로서 기획원등에서 오랫동안 같이 일했는데 항상 서부총리가 앞서갔다.
김재익수석은 다른타임의 경제관료였다. 현실보다 이상을 추구했고 순결무구한 신념파였다. 행정가라기보다 이론가에 가까왔는데 제5공화국에 들어선 정치가가할일을 했다.
저물가·저금리·저임금을 기둥으로한 최근의 경제기조는 김재익철학에 바탕을 둔것이었으며 또 끈질긴 추진력이기도 했다.
강한 이상추구형이어서 과거 부가세실시에 깊이 관여했고 작년의 금리대폭인하나 실명제추진의 연출자였다.
일단 옳다고 믿으면 절대 소신을 굽히지 않고 일로전진하기 때문에 현실과 거리가있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투철한 사명감과 사심없는 몸가짐에 누구나 고개를 숙인다.
서부총리가 취임하고나서 점차 높아져가는 현실론과 종래의 이상론이 어떻게 조화될지 무척 궁금했는데 두사람 다 그 결과를 보지못하고갔다. 특히 김수석은 지난 3년여동안 소신을 갖고 짜왔던 경제구도의 마지막국면을 확인하지 못하고 간것이 아쉽다.
같은 경제학박사출신이지만 서상철동자부장관은 신념보다 조용한 합리를 모토로했다.
김동휘 상공장관은 정통외무관료로서 생소한 분야를 맡고서도 그 특유의 성실과 합리성으로 그 어려운 시기에 『가장 훌륭한 상공장관중의 하나』라는 평을 들었다.
특히 중화학 통합조정의 뒷수습이나 한인자유화등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으며 앞으로 더욱 필요한 경제외교분야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도도한 비교우위론에 맞서고군분투했던 강인희농수산차관. 흙냄새가 풍기면서도 이론적 배경과 국제적 감각도 갖춘 푸근한 행정가였다.
이기욱재무차관이나 하동선해외협력위기획단장은 유능한 자질과 풍부한 경험을 갖고도 미처 그것을 펴볼기회를 갖지못하고 타계했다.
금융재정분야에서의 하단장의 지식과 경륜은 요즘과 같은때엔 대체할수없는국가적 자산인데 결국 때를 얻지못했다.
경협·기획분야에서 풍부한 행정경험을 쌓고 국회에서 정치감각까지 익힌 이기욱차관은 가능성이 많은 재목이었다.
김용한과기처차관도 예산전문가로서 기획원에서 익힌 종합적 경제지식과 경험을 각논분야에서 실용화하려던 참이었다.
일일이 들자면 끝이없다. 모두가 하나같이 이제까지 축적한 원숙의 경륜을 무한히 뻗치려는 때에 어이없이 변을 당한 것이다. 도저히 계산할수 없는 국가적손실이다.
이만큼 재목들을 키우려면 앞으로 몇십년이 걸릴 것이다. 모두가 미완의 대기들인 것이다.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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