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구별 어려운 유니모드 선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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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젊은이들 사이에 유니모드의 선풍이 불고 있다. 옷깃을 덮은 장발에 곱슬곱슬하게 퍼머까지 한머리. 목이 깊게 파인 T셔츠에 쭈글쭈글한 카키색 재킷을 입은 20대 청년 곁에는 비슷한 색깔의 재킷에 헐렁헐렁한 청바지를 입은 젊은 여성이 걸어간다. 요즈음 서울종로나 명동등 시내중심가나 대학교 주변에서 쉽게 볼수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20∼30대의 젊은이들 사이에 이른바 유니모드(남녀공용의상)가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있는 유니모드는 단순히 옷뿐만이 아니라 신발, 가방, 장신구, 헤어스타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애용되고 있다.

<멋과 실용>
젊은이들이 유니모드를 즐겨 찾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 첫째 간편하고 활동적이며 둘째개성을 살려주는 멋이 있기 때문이다.
김일섭군(20·H대 무역학과2년)은『남녀의 옷이나 신발이 뚜렷이 구별되어야하고 일정한틀에 얽매여 있는것은 일종의 성적차별』이라고 주장했다.
남녀의상의 차이가 무너지기 사작한 것은 70년대 후반부터 이른바「캐주얼」로 불리는 간편한 활동복이 등장하면서 부터다.
T셔츠·점퍼·짧은코트·재킷·작업복풍의 바지등이 쏟아져 나오면서 남자옷과 여자옷이엄격히 구별되던 전통이 깨지게된 것. 더구나 최근에는 단순한 활동복이 아니라 다양한 패션을 즐기는 남성들이 늘어난데다가 목걸이나 팔찌등의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남성들까지 있고보니 이제는 정말 남자인지 여자인지 얼핏 보아서는 구분할수 없을 정도다.


젊은 여성들도 블라우스나 원피스, 투피스보다는 헐렁한 셔츠에 바지를 즐겨입으며 구두도 굽이 낮은것을 신거나 아예 스포츠화를 신고 여성용 핸드백보다는 여행용 가방등을 메고다니기 때문에 바야흐로 패션의 완전자유화시대가 열린셈이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러한풍조를 두고 한때「A·S패션」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A·S란 영국의 경제학자「아담·스미드」의 약자로 그가 주장한 자유방임주의를 상징한다.
젊은이들의 의생활패턴이 남녀공용을 즐기는 쪽으로 바뀌자 실제로 시내에는 젊은이들을위한 남녀공용 캐주얼의류를 전문적으로 파는 옷가게가 많이 생겨났다. 서울관철동이나 명동·무교동·종로에서 청계천사이의 큰길가에 있는 옷가게들은 대부분 이런 옷을 팔고 있다.
관철동에서 옷가게를 하고있는 정현주씨(32·여)는『손님들의 대부분이 20대 젊은이들이며 남녀가 함께 옷을 사러와 같은 종류의 T셔츠나 바지를 사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옷뿐 아니라 신발도 남녀공용으로 신을수 있는 간편한 스포츠화나 목짧은 부츠가 많이 팔리고 있다. 교복자율화이후 중·고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각종 유명회사의 스포츠화는 물론이고 간편하고 활동하기 좋은 굽낮은 구두나 값이 싼 헝겊구두등이 젊은이들이 즐겨신는 신발의 주류를 이룬다.

<펑크스타일>
복장의 남녀구별이 사라져가는것과 함께 헤어스타일도 남녀를 구별하기가 어려워졌다.
장발이 경범대상에서 제외된 이후 젊은남자들의 머리는 대체로 길어졌지만 요즈음은 미장원에서 퍼머를 하는등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원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남자들이 애용하는스타일은 앞머리만 부풀리고 옆과 뒤는 짧게 커트하는 이른바 펑크스타일.
70년대 중반부터 구미와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펑크머리가 이제는 우리나라 고교생들에게도 꽤 인기가 있다.
이영길군(22·K대영문과3년)은『뻣뻣한 머리보다 손질하기 간편하고 옷차림에도 맞는것같아 퍼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니섹스선풍의 극치는 뭐니뭐니해도 남성들의 액세서리 착용.
목걸이나 팔찌, 심지어는 귀걸이까지 하고 다니는 젊은남성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고 있다. 특별한 장식이 없이 금줄에 메달등이 달린 목걸이나 은백색 팔찌등이 인기를 모으고있는데 주로 명동에서 이런 젊은이들을 많이 볼수 있기 때문에 액세서리를 착용한 남성들은「명동파」로 불리고 있다.
이밖에도 여성용 핸드백보다는 숄더백이나 여행용 가방등이 젊은 여성들사이에서 애용되고 있고, 젊은 남성들도 소지품을 작은 가죽가방이나 아예 어깨에 메고 다니는 핸드백에 넣어 갖고 다니는 일이 많다.

<지켜야할 기본들>
젊은이들의 이같은 유니섹스모드 선풍에 대해 디자이너 인승일씨(30)는『딱딱한 틀에 맞춰 옷이나 헤어스타일을 선택하는것 보다는 자기 체형이나 기호에 맞는 패션을 찾는 것은 당연한 추세』라고 전제하고『그러나 서구의 패션을 무분별하게 모방하거나 어울리지 않는의상을 함부로 입어 오히려 주위사람들을 불쾌하게 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남녀구별이 곤란한 유니섹스모드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도 많다. 두자녀가 모두 대학생이라는 윤종현씨(49·회사원·서울신정2동)는『개성도 좋고 다양성도 좋지만 옷을 입는것도 사회 생활의 일부분이니만큼 최소한의 기본적 룰은 지켜겨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부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니섹스모드는「주어진 옷을 입는 시대」에서「스스로 선택한 옷을 입는 시대」로의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최은미양(S여대3년)은『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옷이나 신발들이 남녀공용이라고 해서 결코 남자가 여자가 되거나 여자가 남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중요한 것은 남녀의 구별이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과 선택의 결과에 대해 책임질수있는 용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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