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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폐쇄」서 점진 「개방」으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버마는 국내적으로는 철저한 통제, 대외적으로는 쇄국정책을 펴고있는 사회주의 국가다.
62년 군사혁명으로 집권한 「네윈」전대통령(현재는 집권인민계획당의장)은 이른바 미얀마식사회주의(Burmese Way to Socialism)를 기본이념으로 지난20년간 영국의 식민지하에서 절치부심해온 반외국 반자본의 국가목표를 강력히 추구해왔다.
이를 위해 버마는 62년이래 이나라 수출의 대종을 이루는 미작을 비롯, 전산업을 국유화하고 74년 신헌법이 채택될때까지 의회를 해산했으며 언론은 신문·잡지공사와 방송공사로 통합했다. 이 과정에서 군이 중요역할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있다.
과거 항영·항일독립운동을 하던 당시의 군인들이 바로 정치에 합세했고 「네윈」도 그중한명이다. 버마최고권력기관인 당중앙집행위원회 멤버15명중 14명이 현역 또는 예비역장성이고, 장관은 18명중 2명이 현역, 16명이 예비역이다. 차관은 물론 정부부처의 국·과장, 지방관서의 주요인사들도 군출신이 많다. 지방관구사령관들이 대부분 집권당의 지구당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헌법은 집권당인 버마사회주의 인민계획당(BSPP)의 1당체제를 명문화하고 있다. 인민의회는 형식상 국가권력의 대표기관이나 그위에 상설기관인 국가허의회가 있다. 대통령은 국가평의회에서 선출해(평의회의장 겸임) 인민의회의 승인을 받아야한다. 수상·각료는 인민의회 의원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며 각료회의를 구성한다. 『버마사회주의계획당이 국가를 지도한다』는 헌법규정에 따라 당은 명실상부한 권력기관이며 「네위」이 당의장을 맡고있어 버마국민들은「산유」대통령이 있지만 여전히「네윈」을 최고지도자로 믿고 있다.
대통령과 당의장을 겸직하고 있다가 대통령직만 81년11월에 양위한 「네윈」은 합법적으로 대통령과 내각을 감독·지도할수 있다.
대통령은 4년 임기이나 중임금기조항이 없다. 인민의회는 74, 78년 두차례 선거를 치렀는데 인민계획당이 각 지구당에 단일후보를 내 일종의 신임투표를 받으며 지금까지 낙선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이같은 군주도하에 운영되어온 「네윈」체제는 48년 독립이래 62년 혁명때까지 민간정치하에서 벌어졌던 극도의 사회혼란을 극복하고 정치적안정을 기하는데는 상당한 기여를했다.
그러나 정부주도로 집행되어온 사회주의경제는 장기정체의 원인도 되었다.
정체경제를 가장 상징적으로 대변하는것은 수출의 감소. 이 나라 총수출의 60%를 차지하는 외화획득원인 쌀수출은 1930년대 최전성기에는 3백만t이었으나 64년에는 2백만t, 70년대에는 40만t으로 줄었다
76년에는 젊은 장교들을 중심으로 한 쿠데타 미수사건이 일어났다.
그후「네윈」은 인민계획당임시대회(76년10월)에서 기존의 사회주의 노선에 신축성을 두어 현실에 적응할것을 선언했다.
이 결과 전 국영공사에 ①상업주의의 도입 ②기업단위의 독립채산제 ③생산경쟁의 실시 ④노동자들에 대한 보너스제등이 도입되었다.
외자도입도 재개되었다. 미소등 강대국의 원조는 여전히 거부하고 있지만 세계은행과 일본·서독등으로부터 끈이 달리지않는 차관을 받아들였다. 현재 진행중인 현대건설의 킨다댐건설, 국제상사의 냉동공장건설공사도 바로 이 외자도입때문에 가능했던것이다. 때마침 신품종이 개발되어 쌀농사도 호조를 띠기 시작했다.
2, 3년전부터 경제성장률이 6%로 급등했으며 20년경제개발 계획도 수립했다.
그러나 금년 74세인 「네윈」이 조타수로 있는한 버마의 경제개방정책은 제한적일수밖에 없다. 그래서 관심은 「네윈」이후에 쏠려있다.
현 「산유」대통령이 「네윈」의 후계자가 될지는 아직 뚜렷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다른 뚜렷한 사람도 없다. 특히 지난5월 「네윈」이 그의 절대심복이며 사실상의 제2인자로 알러져온 당부총서기 「틴우」장군을 밀수혐의로 숙청해버려 더욱 그렇다.
때문에 흔히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사라지면 그러하듯 「네윈」이후의 버마는 집단지도체제가 되리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전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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