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경기퇴조로 재계 「재편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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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기업들이 너 나 할것없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해외건설업체들이 더심하다.
기업들은 증상에 따라 감원이나 기구축소등 군살빼기에서부터 성격이 비슷한 회사들을 통합하거나 계열기업등을 팔기도한다.
일부 기업그룹들은 계열기업들과 부동산등을 몽땅 팔아치워 모기업하나만이라도 살려보려 몸부림을 치고있다.
심한데는 모기업마저 팔아버리려는데도 있다. 일부 건설업체는 도저히 더 버틸수가 없어 그룹자체를 정리하려는데도 있으나 살사람이 없는 형편이다. 껍데기뿐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금년말과 내년초에 걸쳐 대규모의 기업정리및 재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요즈음 기업율을 가보면 「제2의 도약」이니 「창업정신」등의 표어가 많이 불어있다.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비상사태다.
기업들이 이 지경이 된 것은 한때 「황금을 낳는 거위」로 각광을 받던 해외건설이 문제아로 전락된데다 ▲이·장사건의 여파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명성·영동개발진흥사건등 엄청난 금융사고가 잇달아 터졌기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어려운 기업환경속에서도 소리없이 영토를 넓혀가는 저력있는 기업들도 있다.
크게 보면 이런 기업군들은 ▲해외건설에 무리하지 않았거나 ▲탄탄한 내수기반을 갖고있는 비교적 창업의 역사가 긴기업들이다. 역시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것이다.
요즈음 증권가는 물론, 금융가나 업계에서 도마에 오르는 기업들은 기의 중동붐을 타고 급성장했던 해외건설업체들이다.
건설업체중에서도 H사, S사, J사, K사, N사, 다른 H사, L사, 다른 J사, 다른 S사등 9개회사가 심각한 열병에 허덕이고 있다.
이들9개사는 모두 70년대말 단기간에 첨예하게 성장하여 무서운 속도로 기업그룹을 형성했던 기업들이다.
석유값이 내려 해외건설시장에서의 일거리가 크게 준데다「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과거 덤핑수주한 공사가 문제를 드러내고 있기때문이다.
거기에 명성·영동사건으로 금융시장이 경색되어 사채에 크게 의존하고있던 해외건설업체들이 부도직전의 사태에까지 이른것이다. 어찌보뎐 「올것이 온것」이라고 볼수있다.
최근 당국은 우선 급한 불을 끄기위해 이들 9개사중 N사, J사, K사, H사등에 각각 2백억원규모의 긴급자금을 꿔준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구제금융 조치로 일부해외건설업체의 부도는 겨우 메웠으나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기업들은 마지막 안간힘으로 여러자구노력을 하고 있다. 워낙사태가 심각하여 그정도로 문제가 풀리지는 않지만 가만있을수도 없는 형편이다.
N사는 사옥과·건설중인 다리도 내놓았고, J사는 일선에서 물러났던 창업주가 다시 사장으로 취임해 기사회생의 진두지휘를 맡기로했다. 그러나 해외건설업체라고해서 싸잡아 모두 어렵다고 몰아붙일수는 없다.
큰 무리를 하지않고 주판을 꼼꼼히 놓았다는 삼환기업·동아건설·미강건설이나 국내사업에 기반을 둔 한보·자성등은 비교적 튼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매도 먼저 맞는 것이낫다」고 수술을 일찍 시작했던 대농이나 효성등은 오히려방향을 일찍 잡아 회생의 궤도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큰 손실을 막았기 때문이다.
효성의 경우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당장 필요치않은 부동산의 전면 매각, 그룹각사의 대폭적인 합법등 그룹의 근간을 흔드는 과감한 수술을 벌이고 있다.
효성물산은 올2월말 주총에서 윤경중사장(전동양몰리에스터부사장)을 새로 선임하는등 사령탑을 개편했다.
이 회사는 올초 50억원이던 자본금규모를 현재 57억5천만원으로 높인데 이어 다음달에는2백87억원으로 크게 늘린다.
내년4월에는 또 신갈관광, 동양산업, 서울빌딩등을 통합하는 한편 하반기에는 추가유상증자를 통해 자본금규모를 4백억원대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효성물산의 부채비율은 올초 1천7백68%에서 2백16%로 크게 개선된다고.
효성은 올8월 경남개발·효성정유·효성개발등을 효성물산으로 합병시킨데이어 내년2월에는 토프론과 동양나일론을 합병한다. 또 원미섬유를 동양나일론에 흡수합병치키며 효성건설과 효성중공업도 합병할 계획이다.
효성과 대농의 재무구조 개선에는 금싸라기땅의 매각이라는 아픔을 겪은 것이다.
재계의 진통은 영토의 재편을 의미한다.
이유야 어떻든 대우가 신성통상·원림산업등 석유회사를 우리사주 회사형태로 그룹에서 독립시켰으며, 대우중공업을 선두로 「자생력이 우수한 회사」부터 점차「과감하게 독립」 시킬 계획이다. 특히 이달초 섬유회사들의 독립을 단행한 대우그룹은 신성과 원림의 수출을 담당하던(주) 대우소속 무역담당직원 l백90명도 아울러 전출시켰다. 경영합리화를 위해 비대화된 대가족중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있는 식구들을 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삼성도 최근 경영합리화를 위해 삼성중공업·삼성조선·대성중공업등 3회사를 삼성중공업한회사로 통합시킨데 이어 한국중공업의 창원공장을 인수하기도 했다.
현대그룹도 다소 어렵기는하나 자동차와 중공업의 호조와 과거의 막대한 축적으로 버티고 있으며 최근엔 국내 신흥 모그룹의 인수상담까지 오가고있는것으로 알려졌다. 모신흥그룹은 중동에서 번돈으로 불꽃같이 일어났다 과욕에 의한 과잉비대증으로 허덕이다가 모기업을 아예 팔겠다는 의사를 보이고있다는 것이다. <박병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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