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통계의 중추 - 센서스] 중. 선진국선 동네 소득·인구까지 한눈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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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센서스를 독려하기 위해 총리가 직접 나선다. 사진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지난달 3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국제조사(센서스) 조사표를 작성해 조사원에게 전달하는 모습 [지지통신 제공]

지하철 역 앞에 식당을 내려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정보는 무엇일까. 반경 1㎞ 정도 지역 안에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가 우선 궁금하다. 연령이나 직업별 분포까지 알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낮 시간 유동인구는 얼마나 될지 등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누구나 이런 정보를 수월하게 구할 수 있다.

지난달 24일 도쿄(東京) 신주쿠(新宿)구의 일본 통계국에서 만난 곤도 노리오(近藤登雄) 조사관은 "지난해 1월 시작된 '통계 GIS(지리정보시스템) 플라자'를 활용하면 행정구역과 관계없이 일정 범위 안의 주민 수와 연령.직업 분포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일본 센서스인 '국세(國勢)조사'로 얻은 통계를 지리정보시스템에 얹어 누구나 원하는 지역의 인구.주택 통계를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일본 통계국 홈페이지에 들어가 신주쿠역을 선택해 보자. 역을 중심으로 반경 1㎞ 지역은 행정구역상 신주쿠구와 시부야(澁谷)구에 걸쳐 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해당 지역 안에 2000년 기준으로 2만5951가구, 4만4186명의 주민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대학생은 1607명, 미취학 아동은 1338명이다. 직업별로 보면 서비스업 종사자가 8125명, 부동산업 종사자가 1435명이다. GIS플라자는 센서스뿐 아니라 각종 기업 통계와도 연결돼 있다.

◆ 민간도 센서스 적극 활용=일본 통계국이 행정구역을 뛰어넘는 소규모 지역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25가구 정도로 구성된 기본단위구별로 통계를 관리하기 때문이다. 통계를 내고 관리하는 단위가 작기 때문에 여러 행정구역에 걸쳐 있는 지역의 정보도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GIS플라자 개발에 참여한 일본 파스코사는 한 걸음 더 나가 통계와 지리정보를 재가공해 기업에 제공하고 있다. 이 회사 나카즈카 가즈히코(永塚和彦) 광고담당은 "기업들이 보유한 고객 정보와 통계국이 제공하는 센서스 통계를 함께 넣어서 분석하면 한 지역 내 시장 점유율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호주 통계청은 수년 전 민간업체인 맵인포사와 함께 CDATA란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2001년 센서스 데이터를 GIS와 통합해 소비자의 필요에 따라 정보를 가공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호주 센서스는 국민의 소득정보를 조사하기 때문에 기업들에 더 유용한 정보를 생산할 수 있다.

예컨대 소득 수준이 1만 달러가 넘는 사람이 1만 명을 넘는 지역을 보여 달라는 조건을 입력하면 CDATA는 이 조건에 해당하는 곳을 모조리 찾아 준다. 미국 통계청도 센서스 통계와 지리정보를 함께 제공한다. 미국에서 새 점포를 내려는 업체들은 미국 통계청에 일정한 자료 처리 비용만 내면 관련 지역의 세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한국은 걸음마 단계=한국 통계청도 인구주택 총조사 정보를 지도와 함께 제공하고 있지만 동별 인구를 지도 위에 표시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특정 지점에서 일정한 거리에 있는 작은 지역 정보는 볼 수가 없다.

통계청도 민간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일본처럼 작은 지역 단위 정보를 지리정보와 함께 제공하는 새로운 통계지리정보시스템을 2007년부터 시범 서비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통계지리정보팀이 올해 7월 통계청에 신설됐다. 그러나 이 사업은 당장 내년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팀 출범이 늦어지면서 기획예산처에 예산을 신청할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한국교원대 김태헌 (인구학)교수는 "올해 인구주택총조사에 1290억원의 예산을 쓰지만 조사를 통해 만들어진 통계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면 그 부가가치는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크다"며 "센서스를 하기 전에 민간이 어떤 통계를 원하는지 조사해 이를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쿄=김원배 기자

외국선 어떻게 조사하나
하천.도로로 지역 구분
25~30가구로 잘게 쪼개

센서스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선 무엇보다 조사단위를 잘 설정해야 한다. 정부는 행정단위별로 일을 하지만 민간의 경제활동은 행정구역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의 행정구역이라도 여러 개의 작은 단위로 잘게 쪼개 조사하고, 이를 다음 조사 때도 그대로 유지해야 민간이 활용할 수 있는 통계를 생산할 수 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은 지역별로 25~30가구로 구성된 통계단위를 설정해 조사.관리한다. 이 단위는 구분이 쉽도록 도로나 하천 등 지형 지물로 경계를 확실히 한다. 이런 단위를 미국은 '센서스 블록', 일본은 '기본단위구'라고 부른다. 통계단위를 고정시켜 두면 센서스가 5~10년 단위로 실시되더라도 일관된 조사가 가능하다. 시대별로 각 지역 인구나 주민 소득 추이를 분석할 수도 있다. 통계단위가 정해져 있으면 조사구 설정도 쉽다. 일본은 기본단위구 2~3개를 모아 한 명의 조사원에게 조사를 맡긴다.

반면 한국에선 각 조사원에게 조사지역을 할당할 때도 매번 지역 구분을 달리해 왔다. 센서스 결과도 읍.면.동 단위까지만 구분해 발표해왔다.

이 때문에 조사의 일관성도 떨어졌고, 오랜 시간에 걸친 한 지역의 인구.주택 변화를 추적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문제를 감안해 통계청도 2000년 센서스가 끝난 뒤 전국을 일본의 기본단위구 같은 '기초단위구'로 나눴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도 제대로 된 기초단위구별 조사는 하지 못했다. 조사원에게 60가구씩 고르게 배분하는 데 중점을 두다 보니 가구 수가 다른 기초단위구를 조사구로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 조사에선 센서스가 끝난 뒤 별도 작업을 거쳐 기초단위구별 통계를 따로 만들기로 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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