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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가서 본 평양과 ‘아리랑’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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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북한이 자랑했던 평양의 '아리랑' 공연이 지난달 31일 막을 내렸다. 8월 16일 시작한 이번 공연에 남한에서 모두 7203명이 다녀왔다. "체제 선전 성격의 행사에 대규모 방북단이 참여하는 게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에다 공연에 동원된 북한 아동들의 인권문제까지 공연 내내 논란이 뜨거웠다. 이번 공연을 직접 본 20~30대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북한을 '또 하나의 색다른 세상'이라고 보지만 '초현실적 세상'이라는 느낌도 받는 2030세대. 현대사의 무게로부터 비교적 자유스러운 이들이 아리랑 공연에 투영된 '분단의 차이'를 감각적으로 풀어놓았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현광훈(위)씨는 평양 시내 건물을 ‘수수함의 미학’이라고 정의했고, 전경미씨에겐 아리랑 공연이 ‘초현실적 광경’ 으로 남았다. 북쪽 직원과 함께 폰카를 찍은 박세진 씨는 3년간 11번이나 북한을 다녀왔다.

◆이승광(36.한국존슨앤드존슨 메디컬㈜ 차장)=회사가 매년 20만 달러 상당의 대북 의료지원을 하고 있어 업무차 방북했다. 나는 통상 386세대로 분류되지만 북한 하면 두려운 생각이 앞서고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다.

평양 방문의 하이라이트였던 아리랑 공연은 문화예술이라기보다 정치적 이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사람의 노력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고 인류 역사에서 언제 저런 공연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진정으로 즐거운 축전이 되려면 좀 더 밝은 분위기의 공연이 필요하다.

혹자는 아리랑 공연에 동원돼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어린 학생들을 서울올림픽 때 동원된 우리 학생들에 비교하기도 하지만 말도 안 된다. 두 달 넘게 매일 밤 전투를 방불케 하는 행사에 동원되는 것은 그 행사 자체보다 준비과정을 생각해 볼 때 서울올림픽 때의 동원과 비교할 수 없다.

앞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북한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랑 공연 도중 눈물을 흘리는 관광객도 봤다. 물론 어린 학생들이 혼신을 다해 연기하는 것을 보니 나도 가슴이 찡해졌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감동적이라고 해서 선전하고자 하는 체제가 감동적인 것은 아니다. 앞으로 아리랑 같은 체제 선전성 관광보다 우리가 지원하는 시설을 더 꼼꼼히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전경미(26.여.한국복지재단 영등포복지관 사원)="예전에 아리랑 포스터를 떼어내 버린 관광객은 남한에 못 돌아갈 뻔 했습네다."

지난달 14일 평양에서 북쪽 안내원이 던진 엄포다. 아리랑 공연과 한국복지재단의 대북 사업장을 둘러보러 함께 간 일행 중 한 명이 버스에 붙어 있는 아리랑 포스터가 반듯하지 않아 손을 좀 댔더니 딱딱한 표정으로 겁을 준 것이다. 30㎝ 정도 되는 포스터 한 장으로 남북관계가 좌우될 수도 있다는 말 같았다.

'수령님 만세''수령님 감사합니다' 등의 구호에 예상보다 크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저 사람들은 이런 교육을 얼마나 많이 받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저런 표현.구호가 익숙하겠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그 사람들이 하는 말과 신념에 남쪽 사람들이 거부감이 든다고 그 자리에서 서로 설득하거나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서로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거부감보다는 '생소함과 안쓰러움'이 아리랑과 평양의 인상이다. 특히 평양 시내는 전기를 아끼느라 캄캄했지만 공연이 열리는 능라도 경기장은 대낮같이 밝았다. 주위 사람들과 "시내 전력 아껴서 아리랑에 다 쓰나"하는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 처음에는 아리랑을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었지만 나중에는 차마 셔터가 눌러지지 않았다.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을까, 대가는 충분히 받을까 하는 생각에 안쓰러웠다.

처음에는 10만 명이 일제히 동작을 맞추는 모습이 놀라웠는데 나중에는 인형이나 기계를 보는 것 같아 지겹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프로그램이 돼 있는 인형 같았고 카드 섹션은 전광판 같았다. 나도 어릴 때 단체 부채춤 등에 참여해 보기는 했지만 다 협동심 등 교육을 위해 받은 것이었다. 북쪽 사람들은 어떤 기분으로 공연에 참여할까. 이해가 되지 않아 아리랑은 일종의 '초현실적인 광경'으로 남았다.

◆현광훈(24.홍익대 금속조형디자인과 00학번)=2년 전 아버지께서 평양에 다녀오셨다. 직접 수확한 제주도 감귤을 북에 보내준 뒤 초청을 받으신 것이다. 그때 평양에서 찍어온 사진을 보면서 호기심을 가졌다. 그러다 10월 초 학교에서 방북단을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지원했다. 쉽게 가볼 수 없는 곳 아닌가. 꼭 북한이라서가 아니라 색다른 세상을 보는 기회라고나 할까.

아리랑 공연에서 평양 미술대학이 무대나 조명 등을 맡는다는 얘길 듣고 북한 학생들의 실력이 궁금했다. 그저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보니 수준이 장난이 아니었다. 북한의 미술이 그렇듯이 리얼리티(실사)를 표현하는 능력은 대단했다. 남쪽은 추상 등 다양성을 중시하는 데 비해 북에서는 아직도 실사가 주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질감이 들지는 않았다. 단지 남쪽에서 보기 힘든 분야를 보는 느낌이랄까. 어린이 궁전에서 만난 미술 하는 아이들도 리얼리티의 표현력이 뛰어났다.

공연 중간 중간 나오는 '위대한 수령님'이란 이야기를 처음엔 우상 숭배로 느꼈다. 그렇지만 모든 북한 사람이 그렇게 믿고 있다면 그건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거기 분위기가 원래 그렇지 않은가?

색깔은 모두 회색이고 생긴 것도 비슷한 평양 시내 건물들이 신기했다. 구조적인 특징이 있는 건물은 없었지만 그런 건물들이 모여 있으니 나중엔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수함의 미학이라고 할까.

◆김동심(28.여.투어몰 국내영업팀장)=첫 방북에서 느낀 점은 내가 북한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20대라 반공 교육을 철저하게 받지는 않았지만, 내 머릿속의 북한은 극단적으로 통제된 사회였다. 하지만 의외로 우리와 비슷한 모습도 많이 발견했다. 딱딱하기만 할 줄 알았던 북한 안내원은 우리와 자연스럽게 어울려 사진을 찍었다. 또 관광객들은 거리 제한은 있었지만 호텔 주변을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었다. 아리랑 공연이 체제 선전 일색일 것이라는 짐작과 달리 사회주의를 구체적으로 선전하는 내용은 거의 없었다는 게 내 느낌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침에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노역길에 나선 북한 주민들을 봤는데, 옷은 남루하고 손엔 호미를 든 모습이었다. 한가로워 보였다. 하루하루 경쟁에 쫓기는 남한 사람들과 비교하며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제3자의 입장이기에 느긋하게 북한을 바라본 것도 사실이다. 내가 이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평균적으로 키가 작고 마른 북한 주민들을 보며 경제난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일성 수령을 찬양하며 울먹이는 안내원을 볼 때도 마음이 착잡했다. 이런 생각은 매스 게임을 보면서 가장 심했다. 관객으로서는 '이 나라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굉장한 공연이로구나'하는 생각에 100여만원의 관광비도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주민들의 희생도 보였다. 이 공연을 위해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혹사를 당했을 것이었다.

이번 방북으로 통일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그냥 빨리 통일이 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양쪽 사회의 차이를 깨닫고 난 지금은, 대북 원조 등을 통해 이 차이를 최소화하는 게 먼저고 그 다음에 통일이 이뤄져야 충격이 덜할 거라는 생각이다. 아리랑 방문길에 북한과 통일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넓혔으니, 큰 수확인 셈이다.

◆박세진(32.평화그룹 홍보마케팅팀장)=우리 회사에서 대북사업 일을 맡으면서 2003년부터 11번이나 북한을 다녀왔다. 아리랑 공연은 여덟 번이나 봤다. 공연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은 산을 보지 않고 나무를 보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처음 공연을 봤을 때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수만 명이 만들어내는 군무와 카드 섹션의 어마어마한 모습 때문이다. 아리랑 공연이 갖는 음악적인 신선감도 언급하고 싶다. 전통음악을 현대화한 '조선가요'를 적절히 편곡해 공연에 사용했는데 독특한 맛이 있었다. 서양 음악에 길들여져 있는 남쪽 사람들도 그런 음악과 리듬에 흥겨워지고 슬퍼질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정치적 색깔이 짙었다. '아리랑'이라는 테마를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풀어내 남쪽 사람들이 보는 데 부담감을 가질 만했다. 일부 체제 선전 구호는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하지만 북측 태도가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진 점도 느낄 수 있었다. '인민군의 국군 격퇴' 장면이 삭제된 점이 특히 그러하다. 위장복 차림의 북한군 특수부대원 3명이 적군 30여 명을 때려눕히는 대목 말이다. 한 북측 관계자는 웃으며 "외세를 때려 잡는 장면인데 남쪽 사람들이 오해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남쪽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만한 내용을 조금씩 수정하거나 완화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런 태도 변화는 북한 사회가 전반적으로 조금씩 활발해지고 부드러워지는 점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한다. 평양을 방문할 때마다 거리 풍경이 달라진다. 물건 판매대가 더 늘어나고 사람들 표정이 점점 밝아지는 것 같다.

정리=이철재.조도연.임미진.박성우.김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