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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국회] 6.25는 통일전쟁 아닌 계급전쟁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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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교수가 얼마전에 6.25를 통일전쟁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1만명 이하의 희생자만을 냈을 것이며 그때 이미 통일이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여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써 1946년당시 한반도에 살고 있는 인민들중의 70%이상이 좌익이었다는 사실을 내세우고 있다. 인민대중들의 다수가 좌익이었기 때문에 서로 살육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며 6.25당시의 대량 살상은 순전이 미국의 개입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가 주장하는 오류의 첫번째는 6.25가 통일전쟁이라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현대사를 조금이라도 깊숙히 들여다 보려고 노력하거나 고민을 한 사람이라면 그의 주장이 얼마나 엉터리 주장인지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북한은 국제공산주의와 깊숙히 연계되어 있었다. 공산주의란 역사적으로 '민족'이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거나 있더라도 민족주의를 말살 하려고 노력하였다. 공산주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민족주의를 특수성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뿐이며 인간사회의 가치중에서 평등이라는 개념을 최고의 보편성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공산주의는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급전쟁을 지향하였다. 민족주의란 공산주의사상을 와해하는 종파분자들의 가치로 낙인을 찍었었다.

소련이 동구의 수많은 민족국가들을 공산주의 이념으로 억압하고 말살해온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동구의 위성국가들이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찾기 시작한 것은 소련의 붕괴가 시작되면서 부터다. 공산주의 사상의 우산 아래에서 민족의 통일을 말하는 것은 반공주의나 마찬가지다. 김일성이 남침을 한것은 결코 민족통일이 아니었다. 공산화에 일차적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 수단으로서 계급전쟁을 한것이다. 한국전쟁당시의 살육의 일차대상은 지주계급이거나 화이트칼라와 같은 지배계층이 주 대상이었다. 6.25는 절대로 민족통일전쟁이 아니라 공산주의 확장전쟁이며 계급전쟁이었다.

강정구교수의 두번째 오류는 1946년 당시 한반도에 사는 인민들의 70%이상이 좌익이었다는 주장이다. 그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많다. 그 당시 한반도의 산업은 대부분 1차산업인 농업이었으며 농지의 대부분은 소수의 지주들이 점유하고 있었다. 다수는 소작농이었으며 지주들의 가렴주구가 사실상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생산 수단인 땅을 무상분배하여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좌익의 주장을 호의적으로 생각했던 소작인들은 대부분 좌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정구교수가 왜 하필이면 1946년의 통계를 인용했는지가 의문이다. 만약 6.25전쟁의 정당성, 예를 들면 인민 대다수가 사회주의 국가를 원했는지를 한국전쟁 당시의 사회사상과의 관련성을 결부시키려 한다면 1950년의 통계를 인용했어야 한다. 1946년과 1950년은 비록 4년에 불과한 짧은 기간이지만 그 당시 한반도에 거주하는 인민들의 사상은 하루에도 열번씩 바뀔 정도로 혼탁한 시절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6월25일은 이미 남한에서 토지개혁이 이루어진 후였다. 그당시 남한의 가구중 90%가 농민이었으며 그들중 상당 부분이 소작농이었는데 토지개혁이후 그들은 지주가 된것이다. 그렇다면 그당시에도 남한 인민의 70%이상이 좌익이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까? 그 대답은 정반대다. 6.25전쟁중에 공산주의에 맞서 가장 용감하게 싸웠던 계층이 바로 과거의 소작농이었던 신흥 토지소유자 들이었다.

남한과 북한은 해방후 똑같이 토지개혁을 단행하였다. 물론 북한이 남한에 앞서 1946년 2월에 토지를 무상몰수하여 무상분배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48년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함으로써 무상몰수와 무상분배라는 초법적인 토지개혁을 단행할 수 없었다. 사적소유의 원칙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유재산을 무상몰수한다는 것은 스스로 만든 헌법을 부정하는 공산주의로의 회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건국한 어른들은 대단히 현명했다. 헌법을 지키면서 사실상의 무상분배나 다름없는 토지개혁을 단행했던 것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선지 1년후에 농지개혁법을 공포했던 것이다.

해방전까지 지주와 소작농은 5:5의 비율로 생산 농산물을 반분하였다. 그러나 미군정이 들어서서 3:7(지주 3, 소작농 7)의 비율로 성과를 배분하였다. 물론 북한도 토지의 무상 몰수를 강행하기전 미군정의 정책을 모방하여 3:7의 비율은 실시하였었다. 남한의 농지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은 연간 생산량의 2배에 해당되는 생산량을 10년에 걸쳐서 갚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원금도 없이 농지가격의 이자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10년에 걸쳐 갚으면 되는 것이다. 해방전의 기준인 5:5의 비율이라면 4년만 소작농을 하면 그 다음 영원히 소작인의 땅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거의 무상분배나 다름없는 것이다. 지금의 기준을 상상해 보라.

북한은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하였다가 그 후에 다시 무상몰수를 하여 사유재산권을 완전히 박탈하였고 협동농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과연 어떤 쪽의 토지분배가 성공적이었는지 강정구교수가 반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혹자들은 그당시 야당이었던 한민당이 토지개혁에 반대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도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대부분 지주출신들이 한민당에 많이 포진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며 일부는 토지개혁을 반대했거나 아니면 거의 무상분배나 다름없는 토지개혁의 내용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당시 한민당은 송진우가 암살된후 김성수가 이끌고 있었다. 한민당 수석총무였던 김성수와 정치부장이엇던 장덕수의 대화를 살펴보자.

김성수:토지개혁을 하면 지주가 없어지고 소작인들이 지주가 되어 직접 경작함으로써 계급없는 사회가 되지 않겠오?'

장덕수:우선 당장에는 그렇게 될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김성수:그러나 지주들 가운데 논밭을 판돈을 가지고 공장시설을 사서 운영하거나 운수업을 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결국 유산게급과 무산계급이 다시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요.

장덕수:아무리 공산주의라도 계급없는 사회를 만들기란 불가능합니다. 토지개혁을 민주적으로 이룩하자면 지주측과 소작인측이 자유로운 토론과 협상을 벌려 국정의 최고 기관인 국회에서 토지개혁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김성수:소작인들은 일단 토지개혁을 환영하겠지만 지주들이 반대할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따라서 우리 한민당이 지주들이 자신들의 논밭을 소작인들과 흥정하도록 응하게끔 유도해야 합니다. 우리 한민당이 맨먼저 해야할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지주 가구수가 30만인데 그들 대부분이 한민당원입니다. 그들중 국회의원이 되려는 사람이 토지개혁법을 반대한다면 대부분의 유권자인 소작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장덕수: 문제는 땅값의 문제인데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김성수:지주들이 오랫동안 소작인들의 소작료를 받아먹고 살아온 좋지 못한 전통에 종지부를 찍고 스스로 노력해서 살아가는 새로운 전통을 수립해야 합니다.

장덕수:농지개혁을 반대하는 지주들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한민당도 깨질 수 있고 동아일보도 크게 혼날 위험이 있습니다. 앞으로 파란 곡절을 겪을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성수:토지개혁을 하지 않으면 공산주의자들에게 다 먹히고 말 것입니다.

장덕수:우리나라의 양반문화라는 것이 곧 지주문화 아닙니까? 이런 지주문화는 땅이 없어지면 자연히 없어질 것입니다. 유물사관에서도 인정할 것은 인정을 해야지요.

김성수:아무튼 토지개혁을 단행하면 모든 분야에 새로운 풍속과 관행이 생겨날 것입니다. 토지개혁은 우리 민족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련을 안겨 주겠지만 도약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한민당의 지도부는 토지개혁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개혁은 하되 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하여 고심을 했던 것이다. 한민당의 토지개혁에 대한 결단이 없었다면 아무리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였다 하더라도 공산주의를 막아내지 못햇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강정구교수는 해방공간에서 이념의 프레임들이 시시가각 어떻게 변천되고 있었는지를 보다 정밀하게 접근하여 자신이 주장한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가 주장했다는 만경대 정신이 무엇인지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도 알고 싶다.[디지털국회 이근진]

(이 글은 인터넷 중앙일보에 게시된 회원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중앙일보의 논조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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