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그래도 글동네는 따뜻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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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문태준 시인과 김연수 작가와의 인연은 사실 문단에서 오래된 얘기다. 둘은 경북 김천중.고교 동기동창으로 문단에서 가장 절친한 사이다. 김연수씨가 축사에서 언급한 둘의 관계는,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나는 문군(늘 이렇게 부른다)과 사실 친하지 않았다. 중학 시절 그는 늘 1등이었기 때문이다. 공부벌레가 장차 무엇이 될꼬, 걱정만 앞섰다. 대학생이 되고서 어느 날 문군이 산동네 내 자취방에 종이뭉치를 들고 올라왔다. 그리고 자신이 쓴 시라며 보여줬다(그때 김연수씨는 시인이었다. 93년 '작가세계'신인상 시 부문 당선자다). 하여 기성 시인의 입장에서 문청의 습작시를 검토하고 한마디했다. '자네, 이대로만 쓰면 곧 등단할 것이네'. 그랬더니 다음달 문군은 등단(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고 그때부터 난 시에 흥미를 잃고 소설을 써야만 했다."

박수와 폭소가 쏟아지는 와중에 그는 김훈씨 얘기로 넘어갔다. 둘은 경기도 일산에 살면서 밤에 자주 술잔을 부딪치는 사이다. 김훈씨가 수상작 '언니의 폐경'을 마감한 날도 둘은 술을 마셨단다. 김연수씨의 한 마디는 이랬다. "그 소설, 좋습니다. 다 좋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왜 그 소설을 하필이면 올해 발표하셨습니까, 선생님?" 그는 올해 김훈씨와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인 후보였다.

문단이 예전과 같은 낭만을 잃은 시대라고 한다. 문단마저 삭막하고 팍팍하면 안된다고 우려하는 이도 많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닌가 보다. 훈훈한 온기가 여직 남아있나 보다. 그렇지 않아도 원로시인 최하림씨가 '현대문학'에 연재중인 문태준 시인과의 릴레이 편지에서 문 시인의 미당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글을 남겨 화제가 된 참이었다. 김연수씨의 축사는 이렇게 맺었다. "축사하는 것은 역시 축사받는 것보다 행복하군요."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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