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문형표가 건강보험을 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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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선임기자

2004년 8월 중앙일보 2면에 ‘연금 소득자도 건보료 내도록’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건보료 무임승차 중인 고액의 공무원연금 수령자에게 별도 건보료를 물리겠다는 기사다. 이게 오보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 수차례 비슷한 기사가 이어졌지만 모두 오보였다. 약간 진도를 내다 번번이 좌초됐다. 선배 공무원을 현직 공무원 후배들이 봐준다는 비판까지 나왔지만 소용없었다. 그런데 그 기사가 9년 만에 ‘특종’이 됐다. 2013년 8월 4000만원이 넘는 연금 수령자에 한해 무임승차를 폐지했다.

 2012년 9월 한 일간지에 ‘월급 외 소득에 추가 건보료, 왜 2년 전 기준 소급적용하나’라는 기사가 실렸다. 월급 외에 연간 임대소득이나 금융소득이 7200만원을 넘을 경우 거기에도 별도 건보료(종합소득 건보료)를 물리기로 하자 반발이 거세다는 내용이었다. 한 기사는 건보료 무임승차 축소를, 다른 기사는 고소득 직장인 건보료 추가 부담을 다뤘다. 최근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이 제시한 ‘저소득층은 줄이고 고소득 직장인은 늘리는’ 안과 일치한다. 정부는 이번에도 고소득층 반발이 겁났을 거다.

 그런데 정부가 간과한 게 있다. 건보료의 폭발성이다. 세금보다 훨씬 민감하다. 전 국민이 관련돼 있다. 소득세를 내는 근로자는 절반이 안 된다. 세금 많다고 도끼나 시너를 들고 세무서 가서 항의하지 않는다. 세금은 납세자가 소송에서 이길 때가 있지만 건보료는 거의 백전백패다. 정부가 정작 무서워할 대상은 750만 세대의 지역가입자다. 이들은 너나없이 ‘마음의 도끼’를 품고 있다. 이들이 도끼를 들 때까지 그 참담한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새누리당과 정부가 개선안을 최대한 빨리, 가능하면 상반기 또는 올해 안에 내놓기로 한 점이다.

 만약 문 장관의 중단 선언이 없었으면 ‘상반기 목표’는 태어나지 못했을 게다. 정상적으로 진행했다면 부담이 늘어나는 사람의 반발에 겁먹었을 것이고, 국회를 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연이은 선거 때문에 이 정부에서 물 건너갈 공산이 컸다.

 지난 열흘, ‘중단 선언-반발-재추진-상반기 내 개선안’까지 숨가쁘게 상황이 바뀌었다. 문 장관의 속이 쓰릴지는 모르지만 그의 중단 선언이 건보료 개편의 당위성을 만방에 알렸고, 이 과정에서 이런저런 걸림돌이 많이 정리됐다. 잘하면 개혁을 3~4년 앞당기는 효과를 내게 됐다. 극적 반전이다. 하지만 이런 반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