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없는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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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8년 전 오랜 유방암으로 고생하시던 어머니가 10월 중순께 돌아가셨다.
네남매 중에 위로 둘 장성한 우리 자매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남이야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겠지만, 어머니의 살아온 길, 병마에 시달린 몇 년 세월을 알고 있는 우리는 이제야 편한 세상으로 가셨거니 굳게 믿었다.
평소에 원하신대로 화장을 하여 광나루 을씨년스런 잿빛 강물 위에 나룻배를 빌었다.
스무살인 세째는 『아직도 따뜻해』하며 뼛가루가 담긴 봉지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불가마에서 달궈진 뼛가루를 어머니의 체온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믿고 있었다. 다시는 만져 보지 못할 엄마의 그것을 한줌씩 강물에 뿌렸다.
그때 처음 울었다. 뜨거운 눈물에 얼굴이 젖었다. 강바람에 날린 머리카락이 그 위에 젖어 엉기고 있었다.
그런 후 날씨가 더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또 남들이 성묘를 나설 때면 늘 후회했다.
땅은 조금 따듯할 듯 싶었고, 찾아 갈곳도 없이 화장해버린 것을 아쉬워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람과 믿음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 사람이어서 목메어 혼을 부르기도 하고, 무덤을 찾기도 하는 것이리라.
머리카락이라도 찾기를 원하며 나선 KAL기 승객들의 유족들.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던 모두가 시체와 유류품의 발견이 시작되자 몸서리친다.
밤낮 없이 수색작업을 벌이며 수고하는 많은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는 유족들.
그들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차라리 KAL기가 꽃불처럼 한 점 남김없이 스러져버린 것이라 믿고싶다. 그리하여 그 하늘에 별들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어제까지도 펑펑 뛰던 뜨거운 가슴이 한 점 찢긴 몸뚱이로 만나야 한다면, 그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이순경<경기도 고양군 신도읍 동산1리53의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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