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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김치 돈 내고 먹읍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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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식당 주인들이 노력은 많이 하겠지만 그들에게 국민건강 보호의 첨병이 돼줄 것을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식당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장사다. 장사는 비용을 낮춰야 이윤을 남길 수 있다. 이게 바로 외식업계에 존재하는 중국산 저가 김치의 확실한 수요 기반이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식당 주인의 양심을 문제 삼는 건 불합리하다.

외식업계에서 김치는 대개 주메뉴에 곁들여 무료로 제공되는 밑반찬이다. 간혹 김치 하나로 승부하는 곳이 있긴 하지만 소수다. "김치 좀 더 주세요"라고 해서 돈을 더 받는다는 식당은 들어본 적이 없다. 세계적 우수식품으로 인정받는 김치가 고작 단무지 비슷한 공짜 밑반찬쯤으로 취급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김치는 음식값에 반영돼 있다. 하지만 그 비중이 높지는 않은 듯하다. 중국산 김치 파동 이후 김치를 비싼 국산으로 바꿨다는 식당들이 음식값을 올리지 않은 것을 보면 그렇다.

이처럼 외식시장에서 김치는 최종 소비자와 판매자 사이에 명확한 가격이 설정돼 있지 않은 상태다. 소비자는 돈을 내고서라도 좋은 김치 반찬을 먹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냥 딸려 나오니 먹으면 먹고, 안 먹으면 안 먹을 뿐이다. 식당 주인은 김치가 의무 공급품인 만큼 싸게 때우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 경우 김치의 질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정상적인 메뉴라면 맛이나 재료 등에 따라 다양한 가격이 설정되는 법이다. 그러나 식당 김치에는 품질과 가격의 조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식당의 밑반찬 김치를 유료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치를 음식값에 어정쩡하게 반영하지 말고 별도로 돈 받고 팔게 하자는 말이다. 김치의 독립 메뉴화라고나 할까. 식당은 다른 메뉴와의 균형을 고려해 김치의 질과 값을 정할 것이다. 일단 값이 매겨지면 파는 쪽이나 사는 쪽 모두 책임이 생겨난다. 또 값이 매겨져야 그에 어울리는 품질도 따질 수 있다.

식당에 따라선 좋은 김치를 만들어 비싸게 팔 수도 있고, 종전처럼 싸구려 수입김치를 사들여 싸게 팔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개별 식당에서 파는 김치의 품질은 그 식당의 전반적인 수준에 수렴할 확률이 높다. 그런 뜻에서 식당 김치의 유료화는 김치의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는 선택과 배제의 힘을 행사할 수 있다. 미심쩍다 싶으면 주문하지 않으면 되고, 제값을 하겠다 싶으면 사먹는 것이다. 지금처럼 김치가 음식값에 얹힌 채 먹든 말든 자동적으로 따라나오기만 하면 소비자가 불량품을 배제하기 어렵다.

초기에는 싸구려 불량김치를 비싸게 파는 얌체 상혼이 나올 위험이 분명 있다. 밥장사만 배불려 준다는 비난도 충분히 예상된다. 그러나 이젠 소비자들이 예전 같지 않다. 한두 번 속으면 아예 발길을 끊는다. 길게 보면 얌체들이 얻을 수 있는 추가 이득은 그리 많지 않다.

문제는 갑자기 김치 값을 내라고 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다. 서민의 외식비 부담이 늘어나는 건 난처한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제값을 내고 맛있는 김치, 안전한 김치를 먹으려는 소비자들은 늘어날 것이다. 검역체계가 조속히 완비될 가능성이 크지 않은 상황에선 더 그렇지 않을까.

남윤호 미디어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