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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선인 9표획득은 서방측외교의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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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뉴욕=이근량특파원】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소련규탄결의안은 소련의 거부권행사로 부결되기는 했지만 통과에 필요한 찬성9표획득에 성공한것은 일단은 서방측의 외교적 승리로 볼수있다. 소련을 규탄하는 결의안은 지난8일 안보리에 상정된후 다음날 표결을할 예정이었으나 미소의 치열한 막후공작때문에 표결이 사흘이나 늦춰졌다. 한국정부는 당초부터 소련의 거부권때문에 결의안이 채택되리라고는 바라지 않았으며 단지 KAL기 격추사건을 표결까지 몰고가 대소외교전을 벌이겠다는 계획이었다.
규탄결의안은 지난8일 상정 초기부터 소련의 거센 방해공작을 받았다.
「사과」나 「배상」이라는 어귀는 물론 「소련」이라는 국명까지 사용하지 않은 결의안의 내용만 보아도 결의안 제안국들이 얼마나 소련과 제3세계국가들을 의식했던가를 알수 있다.
당초 서방측이 집계한 지지표는 ▲미국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토고 ▲자이레 ▲파키스탄등 불과 7개국. 한마디로 많은 회원국들이 소련의 영향력 앞에 몸을 사렸다. 이때문에 서방측은 회원국 설득을 위해 표결을 연기했다.
미국이 소련규탄의 주도자이면서도 결의안 상정때는 네덜란드, 투표연기 발언에는 영국을 내세운것도 이런 상황을 감안한 외교적 계산에서였다. 서방측이 목표로하는 9개국의 지지표를 얻지못할 경우 패배의 체면손상을 피하자는 계산이었다.
이같은 미소포섭전의 목표가된 나라들은 여러가지점을 고러하면서 찬반여부결정에 고심했음이 표결결과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사건직후부터 소련을 줄곧 비난해온 중공이 결국은 기권으로 돈것이라든지, 북한등 공산국가들과도 좋은관계를 유지하고있는 몰타가 찬성표를 던지고 가이아나·짐바브웨·니카라과등 미국보다는 소련쪽에 가까운 나라들도 기권한 사실은 그 좋은 예다.
요르단은 평소 친서방국가이기도하지만 「후세인」왕이 방한중이란 사실도 찬성결정에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유엔관계자들은 보고있다.
그동안의 안보리 진행을 보면 첫 2일간은 소련을 일방적으로 규탄하는 서방측의 무대였다. 수세로 몰린 소련측은 3일째부터 불가리아·폴란드·동독등을 내세워 거센 대소비난을 막아보려 시도했지만 결국 여론의 전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안보리의 발언국은 무려 48개국이나 됐다. 특히 70년대이후 소련이 크게 진출한 아프리카의 각국이 대소비난발언을 한것은 이사건의 특수성 때문으로 볼수 있다.
이러한 아프리카국가의 대소규탄은 특히 미국외교에 적지않은 플러스요인이 됐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동안 이스라엘및 중남미 문제로 제3세계의 비난을 한몸에 받아온 미국으로서는 이번 KAL기사건을 소련과의 제3세계외교전에서 유리한 무기로 쓸수있기 때문이다.
첫2일간 회의에서 가장 신랄한 대소비난발언을한 대표는 일본의 「구로다」(흑전서부)대사였다.
「구로다」대사는 안보리이사회 첫날 비교적강도가 여린 대소비난발언을 했다가 소련의 「트로야노프스키」대사가 『이번 사건에는 일본정부도 책임이 있다』고 발뺌하자 본국정부로부터 긴급훈령을 받아 발언취소까지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밖에 차드의 「말마」대표는 『제시권확증에도 소련은 계속 국제사회를 기만하고 있다』고 발언하는가하면 태국의 「카셈·스리」대표도 『우리는 소련의 냉혈적이며 무뢰한같은 파괴행위속에 살고있다』고 비난발언을 하기도했다.
또 리비아의 「탈레키」대표는 『KAL기 격추사건은 일찌기 이스라엘 군용기에 리비아 민간항공기가 격추당한 사건과 비교된다』고 발언함으로써 친소국가이면서도 소련을 규탄했다.
이번 표결결과 미국과 서방측으로선 일단 외교적승리로 주장할수있게는 됐지만, 미국정부의 국내적입장에서 볼때는 사고직후의강경한 대소여론과는 달리 결의안자체를 온건한 방향으로 돌림으로써 앞으로 의회등에서 보수강경파들에게 시달릴게 분명하다.
미국정부와 한국정부는 KAL기 사건을 긴급 유엔총회로까지 연결, 2차 대소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련의 거부권행사는 지난80년l월13일 이란인질사태당시 미국이 제안한 『대이란경제봉쇄결의안』이후 2년반만에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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