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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실속"은 잃기싫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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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KAL여객기를 격추시킨 소련전투기조종사가 경고사격을 했다는 녹음테이프가 사건발생 11일만에 미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공개되었다. 그러나 두나라 모두 KAL조종사가 경고사격을 알았을만한 증거는 녹음테이프의 어디에도 찾을수없다고 주석을 달긴했다. 우수한 미·일양국의 정보기판들이 경고사격이 사실이었다면 이를 처음부터 몰랐을리가 없었을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러면 왜 열하루가 지나 그런 사실이 공개되었을까. 일본의 미온적인 대소제재태도에서 그런 의문에 대한 간접적인 회답을 읽을수도 있을것 같다.
「나까소네」(중?근강홍)일본수상은 사건발생 6일만인 지난6일 하오 내외법세조사회모임에서 KAL기사건은 『우발적 사건이었다』고 규정하고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침공과는 성격이 다르다』면서 따라서『일소관계의 기간부분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같은 「나까소네」수상의 발언은 9일 각의에서도 반복됐으며 10일 국회에서 행한 소신발표에서도 표현은 다르지만 그대로 살아 남고있다.
이런 그의 태도는 사건발생 이튿날인 2일에 발표된 『일본정부공식견해』(민간기의 격추는 용서할수 없는일)와 4일의 자민당 하계연수회의 수상기조강연(상상을 초월한 만행)과는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일본정부의 자세도 같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일본정부는 5일 제2차 KAL기대책각료회의를 열어 『일·미공동으로 대소조치를 취한다』(6일 후등전관방장관 발표)는 점을 확인했다.
그러나 대소조치를 결정키로한 7일의 3차 각료대책회의는 당초 예정됐던 소련 국영항공의 일본운항금지 혹은 급유제한등 구체적 조치를 보류한채 『소련의 태도를 주시한다』는 싱거운 결론으로 끝났으며 이틀후인 9일의 4차 각료대책회의에서 겨우 소련항공기의임시편운항중지, 공무원의 소련기이용자제라는 미지근한 대소조치를 내놓는데 그쳤다.
소련 국영항공의 2주간 일본취항금지도 13일에나 결정될 예정이다. 주변의 압력에 못견뎌 취한 행동같은 인상을 준다.
이런태도변화에 일본국내에서는 비판적인 여론이 없지않다.
이미 지난 5일 비디오리서치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53.3%가 『소련에 대해 제재조치를 취해야한다』는 의견을 밝히고있다.
6일에는 삿뽀로(찰황)주재소련영사관에 화염병을던진 사건이 있었으며 9일에는 일본정기항공조종사회(ALPAIJ)가 모스크바경유 항공기의 60일간 운항정지를 결의한 「국제정기항공조종사협회」(IFALPA)의 결의를 찬성한다는 의견을 운수상에게 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의 태도는 곁으로만 강경할뿐 실제로는 사건초기부터 대소기본관계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해 왔음이 밝혀지고 있다.
일본정부의 대소조치는 처음부터 한계가 그어져 있었던 셈이다.
일본정부가 소련의 만행을 소리높이 규탄하면서도 막상 제재조치에는 소극적인 이유는 두말할 필요없이 소련에 대한 경제적인 이익의 상실과 소련의 보복조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일본은 금년 상반기에만 23억5천만달러의 대소수출입실적을 가지고 있으며 10월의 무역회담에 이어 10월에는 소련 2백해리내의 어업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다. 일소항로는 구주중계편을 포함하면 연간 20만명이 이용한다. 뿐만아니라 시베리아 천연가스파이프건설, 석유개발참여등 일본이 외면할수 없는 이권이 많다.
이때문에 일본재계는 재빨리 『미국이 어떻게 나오는가도 참고로하고 우리만이 앞강서는 경솔한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2일 영야시웅일본상공회의소회장)고 정부의 행동에 쐐기를 박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가 볼륨을 높여 소련을 비난하는 배경에는 「신시대」를 맞은 한국이나 동맹관계에 있는 미국에 대한 체면에도 관계가 있지만 동시에 이번사건을 국내정치에 최대한 이용하려는 속셈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1일 「나까소네」수상은 시즈오까(정강)의 자민당연수회에서 KAL기사건을 거론하면서 『일본을 둘러싸고 있는 국제정세가 얼마나 치열하고 일촉즉발의 상태인가, 그리고 자위대의 정보수집능력이 어떠하며 국민을 의해 얼마나 애쓰고 있다는것을 이번사건으로 알았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방위력의 정비·증강이 정치의 최대의 책임이다』고 군비증강정책에 이번사건을 이용하려는 속셈을 노골적으로 보였다.
「니까이도」(일계당진)자민당간사장도 3일 시중, 연설에서 KAL기사건을 예로들어 사회당의 비무장중립론을 매도했다.
일본정부는 KAL기사건후 소련의 만행을 밝히기위해 소련기의 교신기록을 공개하고 수색작업에 힘을 기울이는등 사건해명과 처리에 애를쓰고 있는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이 소련의 고의적인 범죄를 우발사고로 몰아버리면서까지 국익에만 집착하고 있는듯한 인상은 지울 수 없다.
이번 KAL기사건은 냉전이 절정에 이르렀던 52년의 이른바 「카탈리나 사건」을 상기시킨다. 8명의 승무원을 태운 스웨덴의 DC-3군용기1대가 발트해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뒤 실종기를 찾으러나선 비행정이 다시 소련미그-15전투기에 격추되었던것이다.
이사건은 유엔에서 연설만 난무했을뿐 아무런 결론도, 성과도없이 흐지부지해 버려 결국 강대국의 침략에 대해 중립국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입증해주었다.
【동경=신성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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