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산 재봉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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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다르르륵 다르르륵』-.
경쾌한 소리를 들으며 갖가지 아기자기한 수예품을 만들다 보니 극성스럽던 무더위도 물러가 버렸다.
나의 작업장이 되어버린 작은 부엌방. 그 방에 들어가면 가위를 든 마술사가 되는 커다란 즐거움이 있다.
쓸모 없게 된 작은 천이나 헌옷, 필요에 따라 시장에서 값싸게 끊어온 천을 커다란 가위로 삭독삭독 잘라서 식탁보·의자덮개·큰아이의 도시락주머니·둘째의 탬버린 주머니와 실내화 가방도 만들고, 앞집 할머니의 치맛단도 줄여드리고, 2층 새댁의 커튼도 박아주었다.
여학교시절 우리집 재봉틀은 많은 바늘이 부러져 나갔지만 내가 바느질 솜씨를 익히는데 큰 공을 세워 지금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결혼 후 시댁의 재봉틀도 내 차지였다. 시어머님의 재봉틀은 오랜 세월을 견디어낸 골동품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추석에 다녀갈 아들들에게 깨끗한 이부자리를 만들어 주시려고 깨끗이 빨아 빳빳이 풀을 먹인 이불 홑청의 해진 곳은 깁고 짧은 것은 잇곤 하셨는데, 시어머님이 길이를 맞추어 주시면 재봉틀질은 내가 해서 시어머님과 나는 친정어머니와 딸 같은 정겨움이 솟아나곤 했었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시던 해, 긴 장마가 지난뒤 재봉틀을 열어보니 빨갛게 녹이 슬어 있었다.
평소 최신형의 재봉틀을 갖고 싶던 나는 시아버님께 말씀드려 녹슨 재봉틀을 없애고 최신형이라는 지금의 재봉틀을 들여놓았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시어머님과 함께 쓰던,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것이었지만 매끄럽게 박아지던 그 재봉틀이 마음에 남아 새 것 만을 좋아하여 경솔했던 그때의 행동이 후회스럽기만하다.
하지만 지금의 이 재봉틀이 골동품이 되도록 조카들의 생일엔 서투르지만 정성껏 만든 원피스를 선물하고, 크고 작은 것을 알맞게 고치며, 집안의 모든 장식을 가족들의 취향에 맞게 디자인하여 한올 한올 박아 완성시켜가야지 라고 다짐해 본다.

<서울 은평구 구현동489의19 3통7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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