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사건 많이 다뤄 「현실속의 시조」를 실감|5편 모두 직정일변도…자제로 육화못한 아쉬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하도 어처구니 없고 기가 막혀 할말조차 잃는다. KAL기 피격사건-.
오늘을 오늘답게 살려 항시 의식의 문을 열어두고 생활속에서 즐겨 시를 찾는 우리「겨레시의 가족」인들 맞닥뜨린 그 엄청난 현실 상황을 그냥 스치고 넘어갈 턱이 없다. 아니, 한결 더 절실하게 가슴으로 부딪치고, 한층 더 민감하게 피부로 느꼈을 법하다. 이 충격·분노·원망·비애·연민·울분으로 응어리진 아픔을, 음모에 가리운 그 야만의 실루엣을, 열병과도 같이 번지는 겨레의 절규를.
과연 그러했다. 그것을 다룬 시조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온 것이었다. 이 겨레시 짓기의 광장이 오늘날 우리겨레의 생활과 감정을 비추어내는 창의 몫을 톡톡이 하고 있으을 새삼 실감케했다.
투고된 그 작품들을 성분따라 나누어 보면 대강 다음과 같은 다섯갈래로 집약된다.
①작금에 메아리지는 겨레의 열띤 성시를 대변한 것.
②어데다 당장 분풀이도 할 수없는 약소국의 비애.
③희생된 동포를 비롯한 「세계시민」에 대한 연민과 애도.
④잔인하고 악랄한 공산당에 대한 새삼스런 환멸.
⑤강대국들에 대한 진하디 진한 불신. 적어도 그 사건에 얽힌 감정이라면, 이것들 위에 덮을 또 무엇이 있겠는가. 실로 「민초」의 촉각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이번 기회에 절감한 나머지 선자는 여러분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드려야겠다.
손을 보아서라도 다 실리고 싶지만 지면 사정으로 그렇지 못함이 못내 유감스럽다.
빛을 보이는 5편의 시조들에 나타난 공통분모는 직정 일변도, 그것이다. 온통 흥분이 지배하는데다 일정한 여과과정을 거칠만한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 탓이기에 그 점은 충분한 이해의 근거를 남기기는 한다.
그러나 역시 시는 단순한 울분의 토로는 아니다. 열정적인 강론에 그쳐서도 안된다. 메시지는 더욱 아니다. 구호에 머물러서는 더 더욱 곤란하다.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자제로써 그 직정을 가라 앉히고 삭여 육화시킬수 있는 최소한의 과정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참다운 시를 낳을 수 없는 것이다. 비록 즉흥시의 경우라 하더라도 이들 작품에 대한 시조 자체로서의 우열을 말한다는 것은 차라리 부질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설익은 채로 뜨겁게 달아오른 그들의 목소리에 비판없이 귀를 기울이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여러분의 그 진실하고도 절절한 목소리에 화답코자 선자도 여기 즉흥 한 수를 띄운다.
체한 피 다친 금선, 등신으로 흘린 닷새.
눈먼 진혼곡에 귀가 뻔한 간밤에사 황량한 그 먼 남의 바다에서 떼 원혼이랑 울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