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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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는 악몽과도 같은 1주일을 보냈다. 7일은 KAL여객사 희생자들의 합동위령제를 갖고 원혼의 통한을 위로하며 다시금 소련의 만행에 국민적인 분노를 터뜨렸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 충격과 분노와 비탄에만 빠져 있을수는 없다. 우리에겐 .새로운 내일이 있으며, 또 내일에 대비하는 새로운 각성과 결의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번 KAL여객기의 피격사건은 팽창주의에 혈안이 된 소련공산주의자들이 얼마나 잔혹하고 비인도적인가를 온세계가 보장하는 상징적인 계기가 되었다.
자유우방은 평화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더욱 힘을 기르고 경계와 방위태세를 강화해야한다는 교훈이 된것이다.
이번에 비무장 여객기를 박살내고 그 안에 타고 있던 수많은 생명을 일시에 앗아버린 소련의 인류에 대한 적대행위는 역사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소련은 지금이라도 진상을솔직이 밝혀야 할것이며 사죄·배상의 책임을 이행하고 차후 항공기의 안전운항을 보장할 것을 인류의 이름으로 촉구한다.
또 사고해역에서 수거한 희생자들의 유해와 유류품이 있다면 즉각 유족들에게 돌려주어야 할것이며 나머지 수색작업에도 관계 당사국들이 공동으로 참여할수 있도록 영해를 개방할것도 아울러 촉구한다.
지난1일 KAL여객기가 피격된 이래 수일동안 각일각 숨가쁘게 쏟아져 들어오는 세계의 뉴스와 소련의 후안무치한 태도에 접하면서 우리는 새삼 소련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공산주의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체험하고 목격할수 있었다.
이번 사건을 놓고 희생자들의 국적국은 물론 우리의 우방, 심지어는 중공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정당·단체들까지도 분노와 규탄을 함께 했다. 이는 체제와 이념을 넘어선 인류 양심의 발로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각국은 그들 나름대로 대내외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있는것을 모르는바 아니다.
그러나 인도주의라는 명분이 아직은 생명력과 호소력을 발휘할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우며 냉엄하기만한 국제현실 속에서도 한가닥 온기와 희망을 엿보는것 같다.
한편 이번 KAL기 피격사건을 통해 우리는 미국과 일본등 우방들의 전략적 장비, 정보망의 정확, 치밀함에 놀라움과 안도감을 가질수 있었다. 현대 전자과학기술은 이미 우리의 상상을 넘어 각종전략·전술장비를 개발해냈고 지구 곳곳을 빈틈없이 장시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안보면에서도 마음 든든함을 느끼게 했다.
1만m를 넘는 고공에서, 그것도 한방중에 일어난 일을 그처럼 샅샅이 탐지하고 기록할수 있는 감시망의 위력을 보면서 턱밑에서 호전적인 북괴의 남침위협을 받고 있는 우리는 마음 든든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완벽한 장비와 능력의 과시는 적대국들의 무모한 도발이나 은밀한 기도를 원천적으로 억제시킬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할수 있다. 또한 실리적인 견제작용도 할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방의 이러한 능력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서 자체 감시문제를 소홀히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도 한반도 주변을 빈틈없이 감시할수 있는 정보망을 갖추고 있으리라고 확신해 마지않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에게 정보의 사각지대는 없었는지 철저히 점검하고 이를 더욱 보강하는 자세와 노력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세계의 매스컴이 KAL기사건 뉴스로 들끓고, 미국과 일본에서는 관계 장관들이 수시로 기자회견을 갖고 상황을 알려주고 있는데도 정작 사고비행기의 소속국인 우리는 답답할이 만큼 의아해하고 있었음을 상기하면서 이런 우려를 감출수 없는 것이다.
공산주의와 대결하는 자유우방의 일원으로서 우리도 그들과 대등하게 정보를 교환할수 있는 감청장치를 우리독자적으로 갖춰야겠다는 필요성은 아무리 장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것은 또 우리의 기술이나 능력으로 능히 할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실로 경계해야 할것은 적의 위협 못지않게 우리내면의 자학이나 자조적 푸념이다. 초강대국과 대등한 무력을 갖추고 있는 나라만이 1등국은 아니다. 우리는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의 경제력과 정치적인 역량을 배양하여 부끄럽지 않은 민주적 근대국가를 확립하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세계에 위엄을 보여줄수 있는 나라가 될수 있다.
자전자애할수 있는 국민적 면모와 국력을 갖추면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를 가볍게 보지는 못할 것이다.
끝으로 대한항공 자체의 항공기운항·관리·문제를 재점검할 일이다.
KAL기는 이미 78년「무르만스크사건」을 겪었다. 원인은 앞으로 더 면밀히 조사해야 하겠지만 「항로이탈」의 문제는 이번 사건에 논란의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
기계적·인적요인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심증은 가지만 대한항공은 보다 진지한 원인규명의 노력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것이다. 그것은 사고의 재발을 막고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2백69위의 영혼에 안식과 위안을 주는 일일것이다.
KAL여객기 피격사견 발생 1주일을 맞아 이 사건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교훈과 문제점등을 모든 분야, 각자의 위치에서 깊이 새겨보아야 하겠다.
끝으로 2백69위의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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