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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명만 모십니다, 이랜드 FC ‘미친 마케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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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프로축구 K리그 챌린지(2부리그) 신생팀 서울 이랜드 FC가 ‘미친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이랜드가 내세우는 핵심 키워드는 ‘팬’과 ‘가치’다. 이랜드의 초대 감독 마틴 레니가 홈구장으로 사용할 잠실주경기장에서 자신만만한 포즈를 취했다. [김성룡 기자]

‘미친 마케팅(crazy marketing)’

 프로축구 K리그 챌린지(2부리그) 소속 신생팀 서울 이랜드 FC(이하 이랜드)가 선보이는 신개념 마케팅의 명칭이다. 기존 구단들의 고정관념으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역발상으로 축구판에 새 바람을 일으킨다는 의지를 담았다. 키워드는 ‘팬’과 ‘가치’다.

 이랜드그룹이 축구를 선택한 것 자체가 미친 마케팅의 출발점이다. 2011년부터 프로스포츠단 창단을 준비해 온 이랜드그룹이 국민적인 관심을 받는 야구 대신 축구팀을 만든 건 성장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박상균 서울 이랜드 대표이사는 “프로야구는 이미 무르익은 시장이다. 인기도 높고, 시스템도 잘 갖춰져 충분한 투자만 되면 누구든 일정 수준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 “축구는 여러모로 채워야 할 공백이 많다. 구성원의 능력과 의지에 따라 기대치의 150%나 200%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랜드는 창단을 앞두고 분야별 전문가들을 불러모았다. 개인의 명성과 이력 대신 실력만 봤다. 내로라하는 후보들을 제치고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마틴 레니(40·스코틀랜드)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게 대표적이다. 레니 감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데 익숙하다. 미국프로축구(MLS) 3부리그 클리블랜드 시티스타스 창단과 캐롤라이나 레일호크스(2부리그)의 리빌딩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며 두 팀 모두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레니 감독은 “이랜드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도 경쟁력 있는 팀을 만든 경험이 있다”면서 “이랜드는 구성원 모두가 성공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기분 좋게 지갑 열도록 하겠다”=미친 마케팅의 초점은 축구팬이다. 그 중에서도 ‘축구에 흥미를 느끼는 20~30대 남녀’가 주 타깃이다. 선수 전원의 인생 스토리를 발굴해 공개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위주로 홍보를 하는 것도 이러한 판단에 따른 전략이다. 김태완 단장은 “승리와 우승만이 목표라면 아마추어와 다를 바가 없다. 프로팀은 성적 외에도 즐거움과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팬들과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나눌 방안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객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한 뒤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해 팬들이 기분 좋게 지갑을 열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랜드는 지난해 말 이화여대와 공동으로 포럼을 열고 여성 팬들을 축구장에 불러모을 방안을 고민했다. 지난 달 29일 첫 공개훈련에 팬들을 초청했고, 남해에서 실시 중인 전지훈련 기간에도 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다. 시즌 중에는 킥오프 직전에 출전 선수들이 팬들과 직접 만나 교감을 나누고, 하프타임엔 라커룸에 카메라를 설치해 팀 분위기를 생중계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랜드는 또 홈구장인 잠실종합운동장에 가변좌석 시스템을 도입한다. 그라운드를 둘러싼 네 방향 중 세 면을 벽과 전광판 등으로 막고, 본부석에 해당하는 서측 스탠드만 5000석 안팎으로 운영한다. 좌석 7만 개로 국내 최대 규모인 잠실종합운동장을 안방으로 쓰면서도 소수정예의 팬만을 초대하겠다는 것이다. 이 덕분에 국내 프로축구팀 중 기장 비싼 15만원(성인 일반석 기준)으로 책정한 시즌권도 일찌감치 1000장 가까이 팔려나갔다. 좌석을 줄여 희소성과 가치를 높인 전략이 먹혀든 결과다.

 ◆테스트 탈락자에게 위로 문자=선수 선발 공개테스트에 ‘디 오퍼(The Offer) 2015’라는 타이틀을 붙여 유료 콘텐트로 운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수들은 5만원의 참가비를 내는 대신 구단으로부터 철저히 ‘고객’으로 대접받았다. 레니 감독은 참가자들의 프로필을 보지 않고 현장에서 확인한 실력만으로 선수를 뽑았다. 경쟁률은 546대 1. 이를 통해 2014년 챌린저스리그(4부리그) 득점왕 최유상(25)을 발탁해 인생역전의 기회를 줬다. 탈락자들에게는 구단 명의의 위로 문자를 보냈다. 동시에 국가대표 출신 미드필더 김재성(32)과 조원희(32), 골키퍼 김영광(32) 등을 영입해 K리그 클래식(1부리그) 못지 않은 라인업을 구축했다.

 이랜드가 진행 중인 다양한 실험은 타 리그의 성공사례를 철저히 분석한 결과물이다. 김태완 단장은 “창단 과정은 웨스턴 시드니(호주), 팬과의 소통은 시애틀 사운더스(미국), 연고지역 기업들과의 협업은 밴쿠버 화이트캡스(캐나다), 유소년은 아약스(네덜란드), 지역사회와의 밀착은 반포레 고후(일본)의 선례를 벤치마킹했다”면서 “한국적인 마케팅 모델을 만들어 K리그 구단 운영의 새 표준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박상균 대표는 이랜드가 추구하는 구단 이미지를 ‘맛집’에 비유했다. 그는 “테이블 7~8개만 갖다놓은 맛집과 테이블 20개를 갖춘 평범한 식당의 하루 매출은 엇비슷할 수 있다. 하지만 손님들은 항상 맛집 앞에 길게 줄을 선다”며 “서울 이랜드는 프로축구에서 작지만 가치 있는 ‘맛집’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송지훈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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