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LH아파트 하자, 규제가 낳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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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LH 아파트에서 하자가 급증했다고 한다. 국회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LH아파트의 하자 발생 가구수는 2010년까지는 전체 가구의 10% 내외였으나, 2012년 이후로는 30%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다. 특히 골조 균열과 기기 작동 불량, 변전실, 소방설비 등 입주자의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시설 하자가 전체 하자의 17%를 차지했다. 원인과 대책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그동안 LH아파트에서 하자가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그 이유는 실시설계의 미흡, 발주처의 관리인력 부족, 지급자재의 품질 저하, 시공중 건설사 부도, 공사기간 부족, 저가 낙찰 등이 지적되고 있다. 이 가운데 설계 품질과 관리인력은 부족도 LH 내부적으로 해결 가능한 것이다. 시공중 건설사 부도는 입찰 단계에서 시공사의 경영 상태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는 것이 요구된다.

 더 큰 문제는 외부 규제에 의하여 품질이 저하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자재는 LH 내부는 물론 건설사에서도 최근 하자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2011년 이후 LH아파트 공사에서는 발주자가 지급하는 자재가 크게 늘어났는데, 중소기업청에서 2010년에 도입한 ‘공사용자재의 발주자 직접 구매’ 제도 때문이다. 2008년 폐지되었던 관급자재 제도를 다시 부활한 것이다.

그런데 중소기업청의 규제는 과거의 관급자재 제도보다 규제 강도가 훨씬 강하다. 아예 대기업 납품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LH는 물론 대부분의 공공공사 현장에서는 레미콘이나 아스콘, 싱크대, 위생도기 등을 조달하면서 대기업 제품을 구매할 수 없다. 중소기업청에서 지정한 120개 품목의 자재나 설비는 무조건 중소기업 제품을 구매해야 하고, 대개 해당 조합을 거쳐 공급받는다. 물론 중소기업 제품일지라도 우수한 품질의 제품이 많다. 그러나 경쟁이 배제된 채 조합원사에게 물량이 분배되는 현실에서는 품질 향상의 유인이 낮다. 또, 품질이 낮거나 원거리에서 납품되더라도 시공사가 이를 거부하기 어렵다. 이 제도눈 개선해야 한다. 시공자에게 자재 구매 권한을 박탈한 상태에서 시공 품질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저가 낙찰도 개선해야 한다. 최근 3년간 평균 낙찰률은 예정가격 대비 72% 수준인데, 통상 아파트공사가 토목공사에 비하여 원가율이 높다는 점에서 볼 때 상당히 낮은 낙찰률로 볼 수 있다.

더구나 최근 정부투자기관의 부채 문제가 불거지면서 원가 절감의 일환으로 낙찰률을 낮추려는 시도가 더 강해져 왔다. 이렇게 마른 수건까지 쥐어짜다 보니 LH가 발주한 아파트공사에는 대형 업체가 입찰 참여를 기피하는 현상이 만연되어 왔다. 그 결과 표면상으로 공사비를 절감했다고 하나, 최근 하자보수비용 증가나 구조물 수명 단축, 개보수 비용 증가, 주거 만족도 등을 고려할 때 과연 LH에서 실질적으로 비용을 절감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제는 눈앞의 공사비보다 생애주기비용을 낮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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